혼자 ‘진상’ 고객 감당하지 않도록 해야
감정노동은 르포나 다큐멘터리 형식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슈였다. 2005년 8월 KBS 〈취재파일 4321(현 〈취재파일 K〉)-감정노동을 아시나요?〉에서는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했고, 2006년 8월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웃다가 병든 사람들, 감정노동을 아십니까?〉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겪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실태를 고발했다. 2009년 3월 방영된 MBC 〈시사매거진 2580-안녕하십니까, 고객님?〉에서 자신을 ‘총알받이’ ‘샌드백’으로 표현했던 한 콜센터 상담원은 “(상담원은 기업으로 향할) 고객의 분노를 한 번 막아주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사람들이 일부라고 치부되는 사이, 상담원들이 기업과 소비자 사이를 완충하는 기능을 떠맡았던 것은 잊혔다. 주로 불편이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상시 맞닥뜨리는 콜센터 상담원들.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험한 말을 퍼붓는 ‘이상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그들의 감정노동은 일상이다.
백화점 쇼핑을 가면 가까이 따라붙는 점원이 불쾌하고, 아침 10시부터 전화를 돌려대며 대출이나 보험, 휴대전화 교체를 권하는 상담원의 전화를 매몰차게 끊던 나의 일상과 감정노동자 간의 거리를 좁힌 것은 EBS 〈지식채널 e〉 ‘감정, 노동자’ 편이었다. ‘고객님’에게 암보험을 권유하는 상담원의 익숙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5분 남짓의 짧은 영상에 ‘이상한 사람들’의 흉한 고성은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욕 안 듣고 대화를 계속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점잖게 거절당할까’ 마음을 졸이는 상담원들은 당연하게도, 전화 줄에 생계를 건다. 가능하면 지금 바쁘다고 하거나 모르는 번호가 뜨면 받지 않고 통화 종료를 누르고 있지만, 통화 시간까지 실적으로 체크당하는 쪽을 생각하면 심란하기 짝이 없다. 도움이 필요 없다는 의미로 이어폰을 끼고 있는데도 무언가를 설명하려 애쓰는 판매원에게는 웃으며 목례하지만 서비스업계의 과도하고 융통성 없는 친절 매뉴얼에는 짜증이 솟는다.
6월9일 일요일 밤 방송된 〈SBS 스페셜-가면 뒤의 눈물〉은 일단 사과부터 하게 하고 죄송하다고 말하도록 강요하는 기업의 친절 정책이 부채질하고 확산시킨 ‘진상’ 고객의 힘자랑이 다시 불안정한 고용에 놓여 있는 서비스직 노동자를 향하는 구조를 짚는다. 일의 보람은 물론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종류의 인내도 과연 그들의 몫이어야 할까?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인내’를 서비스 업종의 천형처럼 다뤘던 것을 기억하면 〈가면 뒤의 눈물〉은 이제야 간신히 ‘방어권’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기내식 시비부터 성희롱까지 온갖 억지를 부리는 승객을 대처하는 항공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심리실험에서 승무원 혼자 응대하는 실험군에 비해 같은 상황에서 중간 관리자인 매니저가 중재를 도운 실험군은 매니저 개입 시점부터 스트레스 수치가 떨어지는 결과를 얻었다. 서비스직 노동자가 ‘진상’ 고객의 감정을 받아내는 상황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 욕설 전화 등에 상담원이 먼저 끊을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은 감정노동자들이 자기 인격과 감정을 방어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공기업 콜센터 하청업체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던 상담원이 “고객님 계속 욕하시면 먼저 끊겠습니다”라고 대처한 것에 대해 반성 각서와 징계성 재교육을 요구하는 회사 측에 항의하다 재계약에서 탈락한 사례도 엄연하다. 이것이 그저 ‘이상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칠 문제일까? 조직적으로, 아웃소싱된 부조리에도 눈을 돌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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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바람’ 통화 중인 ‘텔레마케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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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제2회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한 〈단비뉴스〉(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한국인의 5대 불안’ 시리즈 중 이보라씨가 쓴 ‘근로 빈곤의 현장-텔레마케터 2주의 현장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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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보다 알바를 더 걱정하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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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기자
한때 열풍이 일었던 닭 요리 체인점 ‘홍초불닭’ 창업 멤버로 20대 후반에 이미 ‘이사’ 직함을 달아봤다. 그 경력 덕분에 좋지 않은 대학 성적표를 갖고도 영국 맨체스터 비즈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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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개선, 법 개정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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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 (TV 칼럼니스트)
6월9일자 〈SBS 스페셜-가면 뒤의 눈물〉에는 경기도의 L마트에서 ‘불친절’한 직원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생각의자’가 등장한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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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다산콜 상담사에 음란전화 악성민원인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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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여xx에게 몸으로 봉사하고 싶다.", "혼자 자는 게 외롭다."….120다산콜센터 여성 전화상담사에게 도 넘는 음란전화를 일삼은 A씨 등 악성민원인 3명이 서울시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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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의 소망, ‘고객이 욕하면 바로 전화 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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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기 수습기자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주어로 하는 문장을 만들기 어렵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대본에 적힌 대로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대화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