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책 놀이를 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감정’에 관한 놀이다. 아이들의 할머니·할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세대의 부모들은 가난한 살림에 자녀들을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바빴다. 그래서 우리 또래들은 어릴 적에 화가 나도 슬퍼도, 혹은 싫은 마음이 들어도 제대로 ‘어루만짐’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감정이란 어루만져주면 활성화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있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감정적으로는 아이인 상태에 머무른다.
 

책 놀이를 하면서 ‘다 큰 아이’(부모)와 ‘작은 아이’(아이)가 마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민경이(4세 여아) 엄마는 어렸을 때 엄한 부모 밑에서 자라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아이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하루는 부모님과 똑같이 아이를 대하고 있는 거예요. 무척 슬펐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민경이 엄마와 같은 분을 수없이 만나면서 필자는 가족의 감정 문제가 ‘아이-부모-원부모(할머니·할아버지)’ 3대에 걸쳐 형성돼 있으며, 아이와 책 놀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부모 역시 자신의 묵은 감정들을 보듬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정에 관한 책 놀이는 크게 ‘감정놀이’와 ‘표정놀이’로 나뉘는데, 각각의 놀이는 여러 가지로 응용할 수 있다. 먼저 감정놀이를 하기 위해서 보드판이나 글을 쓸 수 있는 유리창, 또는 스케치북이나 4절지 같은 큰 종이와 거기에 맞는 필기도구를 준비한다. 공간을 두 부분으로 나눠서 한쪽에는 책을 읽고 좋았던 감정(긍정적인 감정)을 쓰고 다른 쪽에는 그렇지 않았던 감정(부정적인 감정)을 쓴다. 이때 포인트는 어떤 대목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아이에게 설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수학왕 기철이〉(창비)를 읽은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 난에 “원망스러웠다”라고 쓰고 나서 “기철이 부모님이 수학 경시대회 학원비를 못 준다고 말해서”라고 설명하게 하는 식이다.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은 가족이라면 시중에서 ‘감정 카드’를 구해다가 감정놀이를 해도 좋다. 보드판이나 스케치북에 감정을 쓰면 그때뿐이지만, 감정 카드는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 단어에 대한 집중력이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감정에 대해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라면 ‘표정놀이’를 권하고 싶다. 그림책에 그려진 인물들의 표정은 감정을 잘 표현해놓았다. 감정놀이처럼 표정을 보면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종이에 적어보는 것도 좋다. 특히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같은 인물의 표정이 달라지는 경우 왜 그렇게 되었는지 함께 이야기해보면 아이는 표정 변화만으로 이야기의 맥락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책 읽어주는 로봇〉에서 보보를 납치했을 때 나타나는 심통이 아저씨 표정과 죄를 뉘우칠 때 그의 표정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다. 종이에 인물의 표정을 따라 그려보는 것도 매우 유용하다. 따라 그리는 행위는 ‘촉각’을 사용하기 때문에 표정을 눈으로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감정놀이·표정놀이를 통해 감정을 만져주면 아이의 사회성과 공감 능력도 함께 자란다.

기자명 오승주 (〈책 놀이 책〉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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