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밤하늘을 보게 되었다. 〈스타워즈〉와 〈E.T.〉와 〈에이리언〉 때문이었다. 버려진 형광등을 광선검처럼 휘두르고 툭하면 검지 들어 친구의 이마에 갖다 대던 시절, 내 몸이 숙주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군말 없이 회충약을 먹게도 만들었다. 1980년대 한국 소년들은 그렇게 ‘할리우드 키드’가 되었다. 고개 들어 자꾸 밤하늘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곧 상황은 달라졌다. ‘난닝구’ 액션 영웅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 하드〉 시리즈, 피트니스 액션 영웅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경쟁한 1990년대 극장가. 광활한 우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가 더 이상 시장을 지배하지 못했다. 〈글래디에이터〉 이후에는 시대극 액션, 〈스파이더맨〉 이후에는 슈퍼 히어로 액션, 그리고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가 성공한 이후에는 첩보 액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늘 새로운 유행에 민감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답지 않게(?) 점점 더 어둡고 무거워지는 추세였다.

그때였다.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 〈스타트렉:더 비기닝〉(2009)을 내놓은 것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시리즈 이후 처음 만나는 본격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영화에 미국 관객은 열광했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스닷컴이 집계한 미국 언론과 평단의 지지율이 무려 96%. 298명 가운데 286명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압도적인 호평과 미국 개봉 당시 참 대단했던 흥행 성적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한국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1960년대부터 미국인이 각별히 사랑하고 열광해온 텔레비전 시리즈 〈스타트렉〉을 제대로 본 한국 관객이 거의 없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원작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도 J. J. 에이브럼스가 끝내주게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란 건 이미 알고 있다(그는 김윤진이 출연한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로스트〉를 총괄 기획하고,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와 〈슈퍼 에이트〉를 직접 연출했다). 그러므로 대다수 한국 관객처럼 역시 원작 텔레비전 시리즈 한번 본 적 없는 나에게, 최근 5년간 가장 재미있게 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3등 안에 넣을 영화가 바로 〈스타트렉:더 비기닝〉. 처음부터 끝까지 호쾌하고 유쾌하고 짜릿했던 이 우주 탐험 어드벤처의 속편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할리우드 오락 영화의 최절정

1편에서 친구이자 라이벌 스팍(재커리 퀸토)의 도움으로 악당 네로(에릭 바나)를 무찌르고 엔터프라이즈호 함장이 된 주인공 커크(크리스 파인). 하지만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커크와 엔터프라이즈호는 새로운 악당 존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하지만 커크에겐 스팍이 있고 스팍에겐 커크가 있으니, 그 옛날 열두 살 소년들이 열광하던, ‘무한한 우주로 모험을 떠나는 낭만적인 SF 어드벤처’에서 주인공이 이겨내지 못할 고난이란 없는 법. 이번에도 엔터프라이즈호는 유머와 액션을 무기로 장착하고 신나는 라스트 신을 향해 날아간다!

영화 보고 나오면서 최근 송해성 감독의 인터뷰에서 본 말이 떠올랐다. “감독은 불특정 관객을 컴컴한 공간에 가둬두고 두 시간을 뺏는 사람과도 같다. 인생에서 돌아오지 않을 그 두 시간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J. J. 에이브럼스 감독은 관객의 두 시간에 대해 그 누구보다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게 틀림없다. 할리우드 오락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엔터테이닝한 두 시간.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보고 나서 나는 다시 밤하늘을 보게 되었다. 열두 살 소년으로 돌아가 자꾸 공상에 빠지게 되었다. 벌써부터 〈스타트렉〉 3편을 기다리게 되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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