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유누스뿐만 아니다. 지난 4월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 공단의 라나플라자가 붕괴해 의류산업 노동자 1127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참사 피해자들이 생전에 처했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뒤늦게나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애초 상업용으로 지어진 라나플라자 건물에 불법으로 의류 제조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참사는 예고됐다. 건물은 공장들이 들여놓은 무거운 기계들의 하중을 견디지 못했다. 붕괴 사고 전날 이미 경찰도 대피를 지시했지만 공장 관리자들은 근무를 강요했다.
이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공장 가동을 강행했을까. 방글라데시는 대표적인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생산기지다. 자라·유니클로 등 대부분의 SPA 브랜드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생산처를 외국에 두고 의상을 만드는 글로벌 소싱을 채택했다. 글로벌 소싱의 관건은 비용 절감과 대량생산이다. 결국 소싱국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초과근무에 시달리게 된다.
지난해 11월에도 수도 다카 교외 아슈리아 지역에서 화재로 의류산업 노동자 112명이 숨졌다. 라나플라자 붕괴 이후에도 참사는 계속됐다. 5월8일에는 라나플라자 근처의 또 다른 의류 공장에서 불이 나 공장 상임이사와 경찰관을 포함한 최소 8명이 숨졌다.
반면 경제 빈국의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제품으로 다국적 기업들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브랜드 ‘자라’를 보유한 인디텍스 그룹의 창업주 암나시오 오르테가 지난 4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순위에서 처음으로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라나플라자 붕괴 참사를 계기로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잇단 재해의 책임을 기업과 정부에만 물을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평소 즐겨 입는 옷이 ‘왜’ 저렴한지를 묻기 시작했다.
H&M, 베네통 등에 항의 쇄도
사고가 난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에서 제품을 납품받아온 브랜드는 H&M, 타미힐피거, 베네통, 망고 등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의류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스웨덴의 H&M이 전 세계 소비자로부터 특히 비판을 받았다. 이탈리아 베네통은 참사 직후 “사고가 난 공장 중 베네통에 제품을 납품한 곳은 없다”라는 성명을 냈다가 현장에서 베네통 상표가 붙은 옷이 발견되자 뒤늦게 사과하기도 했다.
지난 4월2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대러 오러크 교수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거대 기업들이 단가를 지나치게 낮추기 때문에 현지 업체들은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불법 건물 증축이나 안전 관리 소홀 등은 여기서 비롯한다”라고 지적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5월19일 H&M을 비롯한 기업 30곳이 방글라데시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기금 30억 달러(약 3조3000억원)를 마련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도 변화를 보인다. 5월7일 라나플라자 입주 공장 소속 노동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고, 5월12일에는 최저임금 인상 계획안을 발표했다.
다국적기업과 방글라데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전 세계 의류 소비자들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 무함마드 유누스가 의류 가격의 50센트 인상 방안을 제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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