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석영중 지음예담 펴냄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표지의 문구가 그렇다. 사실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전기나 소설을 몇 권 읽어본 독자라면 ‘도스토예프스키와 돈’이라는 주제가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입문서로도 제 값을 할 만한 석영중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펴냄)는 이 주제에 관한 종합 보고서이자 흥미로운 뒷담화이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의 데뷔작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부터가 이 ‘잔인한 천재’의 앞날을 예고해주는 듯한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읽히는 〈죄와 벌〉은 가난한 대학생 주인공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돈에 죽고, 돈에 또 죽고’ 하는 이야기였다. 또 만년의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호색한 아버지와 불한당 아들 사이의 주된 갈등이 3000루블이란 돈을 놓고 빚어진다. 아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3000루블에 관한, 3000루블에 의한, 3000루블을 토대로 하는 소설”이라고 말해질 정도다.  

그렇다면 이 러시아 작가는 왜 그토록 돈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가? 저자가 작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여주는 것은 ‘낭비가’의 초상이다. 빈민구제 병원의 의사인 아버지가 근면과 성실을 삶의 보증으로 삼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간이었다면 아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책읽기를 좋아한 조숙한 소년이면서 동시에 부잣집 동급생들의 눈에 혹여라도 가난하게 보일까 봐 ‘과시용 소비’를 일삼은 미숙한 속물이었다. 공병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그는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울먹이는 문체’에 담아서 아버지에게 보내며 그렇게 받은 돈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다 써버렸다. 한술 더 떠서 앞으로 들어올 돈을 상상해가며 당겨 썼다. 이런 식의 턱없는 지출 때문에 그는 항상 쪼들렸고 언제나 주변 사람에게 돈을 꾸어달라고 간청해야 했다.

신문·잡지 열심히 읽어 ‘팔리는 소설’ 쓰다

그런 낭비벽의 소유자가 작가가 됐다. 자기 기질을 숨겨놓을 방도는 없어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고 ‘모욕당한 사람들’이며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 같은 귀족 출신의 동시대 작가와는 창작의 명분이 달랐다. 그는 돈을 위해 썼고 생존을 위해 써야 했다. ‘문학은 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원고는 확실히 돈’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고 언제나 의식했다. 때문에 그는 ‘팔리는’ 소설을 쓰고 싶어했고 써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신문을 읽었다. 그는 ‘광적인 신문 애독가’로서 당대의 신문과 잡지를 게걸스럽게 읽었다. 대작 장편소설의 아이디어를 대부분 신문의 사회면에서 얻었을 정도다. 그런 탓에 살인과 자살 같은 자극적인 사건과 통속적인 요소가 그의 작품에 많이 포함돼 있다. 그의 궁여지책이 어떤 의미에서는 활로였던 셈이다.   

도스토예프스키(오른쪽)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은 대부분 가난하거나 돈을 구걸하는 사람이다.
평생 돈에 쪼들리면서 돈을 위해 펜을 들기는 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에 모든 걸 걸지는 않았다. 〈백치〉의 여주인공 나스타샤가 구애자금으로 받은 거금 10만 루블을 벽난로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장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인물들은 돈보다 우선해 자기가 자존심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저자가 마지막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룬 장의 제목을 ‘돈을 넘어서’라고 붙인 것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잘 이해했고, 돈을 읽었고, 절실히 아주 절실히 돈을 필요로 했지만, 돈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오로지 돈을 필요로만 했지, 원하지도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않았다.’

왜 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사람이란 배가 부르면 배고팠던 시절은 떠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성년〉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란 족속은 ‘자, 이제는 배가 부릅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요?’라고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돈은 그러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해줄 뿐이지 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돈’에 대해 배부르게 읽고 나니 이런 질문이 생겨난다. 이번에는 무엇을 읽어야 하지요?

기자명 이현우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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