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행복한 진로학교

①강도현-화려한 스펙을 버리고 골목을 누비다 
②고원형-스카우트 거절 후 찾아온 ‘아름다운 배움’
③윤태호-가지 않은 길에서 만난 만화 ‘미생’
④권장희-교사를 그만두고 게임중독 치유 전문가로! 
⑤최혁진-그때부터 내 꿈은 협동조합이었다
⑥하종강-내게 ‘노동’은 노래였다
⑦김현수-정신과 의사, 대안학교 교장되다
⑧송인수-강은 곡선으로 흘러 아름답다

ⓒ시사IN 이명익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49·위)은 한영외고·숭실고 교사,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총무, 영상물등급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쳤다.

‘행복한 진로학교’ 강좌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네 번째 강사로 나선 이는 권장희 소장. 인터넷·게임 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있을 때마다 중독의 폐해를 들어 셧다운제 강화 등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규제론자다. 이날도 스마트폰 중독이 아이들의 뇌를 망가뜨린다는 논쟁적인 주제를 다뤘다. 강의 도중 인용한 동영상 자료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홈페이지(www.noworry.kr)에서 열람할 수 있다. 앞으로 진행될 진로학교 강좌 또한 이곳에서 수강할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를 7년 하다 뜻한 바 있어 교사를 그만뒀다. 1993년의 일이다. 그 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에서 일하면서 미디어 문제가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국내 최초로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센터를 만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진로 교육에 앞서 본질적인 얘기를 먼저 하고 싶다. 뇌 발달에 대한 얘기다. 영유아기에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면 진로고 뭐고 소용이 없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아빠들은 어린아이에게 스스럼없이 스마트폰을 건네준다. 어느 쇼핑몰에 보니 유모차용 스마트폰 거치기도 팔더라. 아이들이 유모차 타고 꽃구경, 나비 구경을 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거다. 손자·손녀 키워주는 할아버지·할머니는 어떻고? 어린아이가 스마트폰 사용하는 걸 심지어는 기특하게 생각한다.

유아 스마트폰 중독 현상을 다룬 뉴스 영상을 한번 보자. 실제 어린이집에서 촬영한 건데 인형과 장난감, 스마트폰 3가지를 책상 위에 놓아두고 아이들이 그중 하나를 선택하게끔 했다. 그랬더니 원아 16명 중 10명(63%)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을 선택했다. 이것이 왜 문제일까? 인형이나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뭔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뽀로로 비디오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아이들은 중얼거림이 없다. 사실 부모들도 이런 것 때문에 비디오를 틀어주거나 스마트폰을 건네준다. 특히 아빠들. 엄마들이 ‘애랑 좀 놀아주라’고 부탁하면 애한테 스마트폰을 쥐여주곤 한다. 아이들이 금세 조용해지니까. 그런데 혹시 영유아기 원숭이의 표정을 본 일이 있나. 비디오·스마트폰을 보는 아이들의 표정과 똑같다. 한마디로 ‘멍 때리고’ 있다. 외부의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다.

비디오나 스마트폰에 대한 과다 노출은 부모들의 공부 욕심과도 연관돼 있다. 교육학자들은 열 살이 돼야 비로소 학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나이가 돼야 뇌의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종합적 사고 능력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열 살 이전에는 사고 기능을 쓰는 게 아니라 보고 만지고 느끼고 접촉하는 게 공부다.

그런데 부모들 욕심이 어디 그런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학습을 시키려니 자꾸 비디오를 보여주거나 앱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된다. 어떤 엄마들은 ‘개구리’라고 쓰여 있는 글씨를 누르면 개구리가 팔딱팔딱 뛰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더니 아이들이 한글을 금방 떼더라며 좋아한다. 과연 그럴까. 이 아이들은 시각적 정보를 뇌에 ‘각인’시켰을 뿐 그 뜻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모르고 부모들이 아이를 일종의 문자 중독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다.

뇌는 독서 중 활발히 움직이지만 게임을 할 때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입력한 정보를 정리·표출할 시간 필요

요즘 유치원 교사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종이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책에 토끼나 개구리 그림이 나오면 아이들이 그걸 자꾸 클릭하려 들고, 그래봤자 반응이 없으니까 “재미없어!” 하며 외면한다는 것이다. ‘팝콘 브레인’(팝콘처럼 튀어오르는 것에는 반응하지만 느리게 변화하는 실제 현실에는 무감각해진 뇌)이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책을 볼 때와 영상을 볼 때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과학자들의 실험 영상을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하다. 책을 읽을 때는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아래 사진 참조). 특히 뇌 앞쪽에 있는 전두엽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반면 비디오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는 뇌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그나마 움직이는 것이 뇌 뒤쪽의 후두엽 부위다. 시신경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는 즉각 후두엽으로 전달된다. 전두엽은 이렇게 전달된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비디오나 게임을 즐길 때는 전두엽을 미처 쓸 틈도 없이 후두엽으로만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청각적 자극은 조금 다르다. 내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지금 전두엽을 끊임없이 사용하는 중이다. “저 사람 말이 과연 맞을까?” 의심하면서. 그런 만큼 아빠들에게 꼭 이 얘기를 해주고 싶다. 집에 돌아가면 아이에게 쓸데없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건네줄 게 아니라 끊임없이 아이의 귀에 대고 많은 얘기를 해주시라고. 책을 읽어줘도 좋고 아빠 어릴 적 얘기를 해줘도 좋다. 얘기를 듣는 동안 아이들은 끊임없이 상상을 하며 전두엽을 자극받게 된다. 이게 진짜 투자다. 나중에 아이한테 과외를 시킬 필요도 없어진다.

게임이나 비디오가 아이의 뇌 발달을 어떻게 저해하는지 말씀드렸다. 모리 아키오 일본 니혼 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의 게임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라. 대략 일주일에 3일, 하루 1시간 이상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게임을) 한다면 중학교에 가서 깊이 사고하고 사물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요즘 패턴이 어떤가? 한국 아이들의 공부 시간은 세계 최장으로 유명하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다시 집에 오면 학습지나 인터넷 강의로 뺑뺑이를 돈다. 그 사이사이 짬이 날 때마다 아이들 하는 일이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에 접속하는 거다. 전문가들은 학습이 이뤄지려면 크게 3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1단계 입수(입력), 2단계 정리(분류), 3단계 표출(출력). 입력만 한다고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게 아니라 정리하고 표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표출을 관장하는 부위가 전두엽이다. 그런데 입력한 정보를 정리·표출할 시간에 게임과 스마트폰에만 빠져 있으면 전두엽이 작동할 수 있겠나.

아이들 시험 때도 기이한 풍경이 벌어진다. 대한민국에만 있는 과외가 중간고사·기말고사 특과(특별과외)라고 한다. 과거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시험 기간이 되면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곤 했다. 시험 공부를 하면서 정리와 표출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학원 선생의 ‘요약정리’에 목을 맨다. 한자 그대로 배우고[學] 익혀야[習] 학습이 되는 건데, 습이 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아이들이 핀란드 아이들보다 학습 시간은 두 배 이상 긴데 성과는 더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나는 본다. 문제는 사교육도, 공교육도 아니고 아이들의 뇌가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이는 진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과거에는 잘 외우고 아는 것 많은 아이들이 성공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아는 것이 힘인 시대는 갔다. 마다가스카르처럼 낯선 나라에 대해 알고 싶다고? 스마트폰만 켜면 된다. 위치에서 언어·종교·인구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시콜콜한 정보가 쏟아진다. 그러니 얼마나 빨리 아느냐, 많이 아느냐가 무슨 소용인가. 중3짜리가 고1 진도를 뗐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남의 지식인데…. 이제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지식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벌어먹고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예를 들어보자. 애플 사가 아이폰을 만드는 단가가 100원이라면 그중 30원이 부품 구입비, 5원이 조립비라고 한다. 제조공장 없이 조립도 남의 손을 빌려서 하는 애플 사가 나머지 65원을 가져가는 구조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과거 연구개발(R&D)이라 통칭했던 디자인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디자인은 한마디로 전두엽을 사용한 비용이라는 뜻이다. 중학교에 가면 요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우리 함께 생각해보자” “토론해보자”라고 한다. 전두엽을 쓰려 들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 보니 실리콘밸리에 있는 발도로프 자유학교 기사가 실렸던데, 이 학교는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에 다니는 직원 자녀의 비중이 70% 이상이라고 한다. 등록금은 연간 2만 달러(약 2200만원)가 넘는다. 그런 만큼 최신식 시설이 갖춰져 있을 것 같지만, 이 학교에는 컴퓨터가 단 한 대도 없다고 한다. 학생 중 90% 이상은 구글 검색을 해본 경험이 없다. 스마트 기기를 만들어 먹고사는 회사의 임직원들이 왜 그런 학교에 자기 아이들을 보내는 걸까? 이들은 아는 거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생각하며 사는 아이들은 5원짜리 인생밖에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물론 스마트폰은 굉장히 편리하다. 재미있다. 나 또한 즐겨 사용한다. 어른들은 그래도 된다. 왜? 어차피 인생 다 살지 않았나(웃음).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10대만 살고 말 게 아니다. 긴 미래를 살아가려면 자기 힘을 키워야 한다. 스스로 디자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딸아이가 열여섯 살인데, 나는 아이한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는다. 컴퓨터도 프레젠테이션 영상 만들 때처럼 특별히 필요할 경우가 아니면 사용을 금지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아이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 심심해야 한다는 것이 책을 읽는 절대 조건이다. 아이들이 “심심해”라고 노래를 할 때 어른들이 모른 척 외면하면 집안 어딘가로 사라져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창조력이다. 창조력은 심심해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늘 심심했던 우리 아이는 ‘혼자 놀기의 달인’을 자처한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좋아하는 걸 적어보라면 48가지도 넘게 적는다. 심심할 겨를이 없었던 아이들은 다르다. 중3, 고3이 돼도 “하고 싶은 게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야 어떻게 진로 지도가 되겠나.

내가 계속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단 책을 읽을 때도 주의할 점이 있다. “우리 아이는 만화 학습서를 수십 번 읽어 내용을 다 외워요”라고 자랑하는 엄마들이 있는데, 만화 학습서는 사고력을 키워주지 않는다. 모르는 어휘가 나왔을 때 일반 책을 읽는 아이들이 앞뒤 문맥을 살펴 그 뜻을 유추하는 데 비해 만화 학습서를 읽는 아이들은 그림부터 먼저 본다. 뇌를 쓰려 들지 않는 것이다. 판타지 종류도 마찬가지다. 이런 책만 읽다 보면 사고력이 필요한 책을 읽어내지 못한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지식·과학·역사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란다. 5, 6학년 아이에게 〈한국사〉나 〈100대 과학사건〉을 읽혀보시라. 이걸 읽고 재미있어한다면 그 아이는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아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도 뭔가 잘못된 거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이가 또래 집단에서 왕따가 될까 봐 걱정하는 부모도 있는데 말이 안 된다.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그러니 대학 들어갈 나이가 될 때까지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지 마시기를 권한다. 굳이 스마트폰을 써야겠다면 아이와 반드시 사용 수칙을 정하시라(표 참조). 그리고 얘기해주시라. 네가 경쟁할 상대는 스마트폰을 쓰는 같은 반 아이들이 아니라 창의력으로 무장한 세계의 다른 아이들이라고.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기자명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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