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을 권한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는 게 좋을까? 아, 질문이 너무 앞서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공식 일정과 줄지어 밀려드는 보고서에 묻혀 여유롭게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책 한 권 추천하는 데 무슨 생각이 이리 많으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지만, 친구에게 재미난 책을 권하는 일과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는 건 꽤 다른 일이다.

올 초 화제를 모은 리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 〈파이 이야기〉(작가정신)로 잘 알려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은 자국의 수상에게 2주에 한 번씩 4년에 걸쳐 101통의 편지를 보냈다. 〈길가메시 서사시〉와 〈명상록〉 같은 오랜 고전부터 〈동물농장〉이나 〈노인과 바다〉처럼 널리 읽히는 고전까지,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과 자신의 감상 그리고 자신과 수상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데 엮어, 답장 없는 편지와 집무실 어딘가에 쌓일 책을 공들여 보냈다. 그 편지가 모여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라는 책으로 나왔다.

 
정치인으로서 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문학과 함께 고요한 사색에 잠길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말에는 (공식적으로나마) 편지를 받아본 사람도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다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스티븐 하퍼 수상처럼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의 꿈이 자칫하면 나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 말하며 독서 이력을 공직자의 재산 공개에 빗댄 재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아직까지 수상은 답장을 한 장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자명 박태근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인문·사회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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