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각으로 5월10일 새벽 3시쯤 청와대가 윤창중 대변인을 전격 경질했다. 윤창중씨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8일까지만 해도 방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했다. 그런데 경질된 시점에는 이미 귀국한 상태였다. 10일 오전(한국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밀레니엄 빌트모어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은 “방미 수행 중 윤창중 대변인이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됨으로써 국가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돼 경질하게 됐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 ‘불미스러운 일’은, 주미 대사관 소속 여성 인턴에 대한 성추행이었다.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5월7일 밤(이하 미국 현지 시각)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최초로 감지된 것은 다음 날인 5월8일 밤 9시20분이었다. 한 워싱턴 교민이 카카오톡에 ‘1992년생 수행 인턴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윤창중 전 대변인의 실명을 거론했다. 그리고 5월9일 오전에는 미주 최대 한인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인 ‘미시 유에스에이’(www.missyusa.com)에 다음과 같은 게시물이 올랐다.
 

ⓒ오마이뉴스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박근혜 대통령 워싱턴 방문 수행 중 대사관 인턴을 성폭행했다고 합니다. 교포 여학생이라고 하는데 이대로 묻히지 않게 미시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의) 아이피 캡처하셔도 되고요. 묻히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 게시물이 올라오자마자 순식간에 답글이 쇄도했다. 주로 ‘경찰에 신고하라’는 조언이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안드레아킴’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이 내용을 믿을 수 없으며 FBI에 신고하겠다”라고 답글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수행단에서 윤 전 대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이에 따른 언론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소문’은 ‘사실’로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기사를 쓰고 있는 현재 시점(미국 시각으로 5월10일 새벽)까지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워싱턴 DC 경찰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윤창중 전 대변인의 혐의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추행(sex abuse-misd)’이다. ‘미시 유에스에이’의 게시물에는 ‘성폭행’으로 표현되었지만, 구체적인 혐의는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수사를 거쳐야 확정된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성범죄는 대단한 중죄

대충의 사건 개요는 이렇다. 피해 여성은 미국 시민권자로 이번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 중 채용된 21세의 주미 대사관 인턴 사원이다. ‘사건’은 5월7일 밤 9시30분에 발생해 10시에 종료된다. 구체적인 범행 장소(Designated Area)는 ‘호텔 룸(Hotel/motel Room)’이다. 피해 여성은 사건 다음 날인 5월8일 낮 12시30분에 전화로 신고했다. 피해 여성은 용의자(윤창중 전 대변인)가 “본인의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bed)”라고 진술했다.

윤 전 대변인은, 경찰이 사건을 접수한 직후인 5월8일 오후 1시35분에 미국을 떠났다. 워싱턴 DC 인근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직접 발권했다. 미국 경찰이 윤 전 대변인에게 출두 요구를 한 것은 확인된다. 그러나 경찰이 신고를 접수한 뒤 윤 전 대변인을 체포했다가 풀어주었는지 혹은 윤 전 대변인이 체포 사실을 통보받고 이를 피하기 위해 귀국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미국 경찰은 수사 진행 상황을 사전에 유출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 성범죄는 대단한 중죄다. ‘성범죄 전담반(Special Victims Unit)’이 따로 운영된다. 한국과 달리 친고죄도 아니다. 수사기관이 성범죄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의무적으로 무조건 수사해야 한다. 심지어 성범죄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뉴욕의 성범죄 전담반 수사관은 “미국에서는 누구든지 성범죄 얘기를 듣기만 해도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교사, 병원 관계자 혹은 정부기관 관계자가 성범죄 얘기를 듣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어떤 신체 접촉이 성범죄인지 구별하는 법이나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교육시킨다. 피해 여성은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당한 성추행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5월9일 오전 미주 최대의 한인 여성 커뮤니티인 ‘미시 유에스에이’에 윤창중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미시 유에스에이’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이유도 사이트 이용자들이 주로 미국 시민권자이거나 유학생 등 미국 문화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 게시물은 처음엔 ‘미시 토크’(Missy Talk)라는 대화방의 연예 코너에 올려졌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성토의 열기가 더해가면서 5월9일 오후부터는 ‘핫이슈/사회/정치’ 코너로 옮겨졌으며, 지금도 조회 수는 계속 치솟고 있다.

일부 한국 언론들은 피해 여성을 찾기 위해 미국 교포들이 운영하는 사이트 등에 ‘제보를 원한다’는 내용을 올렸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성범죄 신고가 된 피해자에 대해서는, 경찰이 즉각 보호 조치에 들어간다. 한국 대사관조차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없다.

“윤창중은 미국으로 오라”

이처럼 미국 경찰은 ‘한국 청와대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이미 개시한 상황이다. 문제는 용의자가 해외(한국)로 도주해버려 소환할 수 없다는 것.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한 미국 변호사는 “앞으로 (경찰 조사를 거쳐) 검찰이 기소했는데 용의자가 해외로 도주한 상태이고 그 국가가 미국과 ‘범죄인 인도 협약’을 체결한 곳이라면, 미국 검찰은 용의자를 강제 소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인도 협정의 의무’는 해당 범죄행위가 징역 1년 이상의 형벌을 받을 수 있는 경우다. 그런데 만약 윤 전 대변인이 미국 경찰의 수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법상) 피해자의 진술만이 사실로 인정되어 징역 1년 이상의 형을 실제로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미국은 1998년, 범죄인 인도 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이 협정 제3조에 따르면, 미국 검찰이 윤 전 대변인을 기소하는 경우 한국 경찰에 그를 체포하거나 미국에 이송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교민 사회에서는 ‘윤 전 대변인이 미국에 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한 교민은 “피해자가 미국 시민권자이고, 미국 영토 내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면, 미국 경찰의 조사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청와대 고위 관료라는 사람이 미국 법률을 피해 도주했다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주부 예나씨는 “정부 고위 관료가 성추행을 했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게 도주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경찰이 미국 시민이 피해를 당했는데 그(윤 전 대변인)가 도망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에 분노한다”라고 말했다. 미국에는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주마다 카운슬링과 무료 법률지원을 해주는 시민단체들이 있다. 만약 피해자가 이들 단체와 협력해서 공론화시킨다면, 사건의 파장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사건 파장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도

아직 사건의 전말은 다 밝혀지지 않았다. 피해자의 신고와 진술이 있을 뿐이다. 미국 경찰로서는 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면 윤창중 전 대변인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분명 소명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급하게 귀국하며 스스로 기회를 포기했다. 이 사건은 국적을 떠나 힘없는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피해가 묻힐까 봐 주변에 호소한 것이 인터넷으로 번지면서 시작되었다. 자신을 성추행하고도 유유히 도주하는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피해자의 처절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은 그녀의 억울한 호소에 대한 대답을 미국 경찰에 해야 한다. 성범죄 관련 시민단체의 한 간사는 ‘미국의 정의’에 대해 이렇게 규정했다. “성추행으로 고통을 받는, 이제 갓 21세가 된 어린 여성이 가해자가 도주해버린 것을 알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우리의 임무는 이런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를 찾고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과정을 정의라고 부른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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