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저를 찾아 올까봐 겁나요" 10년 가까이 정들었던 보육원을 퇴소하던 날. 사회로 첫 발을 내디딘 한 아이는 걱정어린 한숨을 내쉬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야기는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한 남매를 보육원에 맡기고 간 아버지는 잊지않고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찾아왔다. 보육원 선생님들은 아이를 맡긴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한 방을 쓰는 선생님이 유독 몸에서 야릇한 냄새가 나는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이튿날 아이를 비뇨기과에 데리고 갔다. 의사선생님은 "성행위를 통해 발병한 것으로 의심되는 성병"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렸다. 그 당시 아이는 12살짜리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보육원 상담선생님의 설득에 입을 연 아이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상담선생님은 당초 보육원 내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유추했지만 실제 '범인'은 한 달에 두 번 정도씩 보육원을 찾던 친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인다며 데리고 나가 9살짜리 아들은 먼저 들여보내고 1~2시간 뒤에 딸을 들여보내곤 했는데 그 까닭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그렇게 친딸을 수년간 성폭행한 아버지는 결국 검찰 조사를 통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의 한 수사관은 친족간 강간사건의 경우 거의 대부분 친부 또는 의부와 딸 사이에서 벌어지는데 조사를 하다보면 피의자(아버지)는 흔히 "내 딸을 내 맘대로 못 하냐" "화간(합의하 성관계)이었다"는 억지 주장을 편다는 것이다.

대검찰청 '2012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1년 발생한 친족간 강간 범죄는 357건으로 4년 전인 2007년 137건에 비해 2.6배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상당수가 신고되지 않고 은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또 대검찰청에 따르면 친족간 강간 등 혐의로 검찰에 신고가 접수된 건수는 2008년 293건에서 2010년 369건에 이어 2011년엔 469건으로 늘었다. 불과 5년 사이에 60% 이상이 늘어난 셈이며 이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2008년 180명에서 지난해 252명으로 40% 증가했다.

보육원의 아동입소 배경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연고자(부모·친인척)가 있지만 경제적으로 부양이 불가능하거나 부모이혼·학대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아동들은 시설에 입소해 지내다 연고자들이 취업에 성공하거나 형편이 나아지면 가족품으로 되돌아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바람직한 경우가 지속되기 보다는 얼마 안돼 시설로 되돌아오는 안타까운 사례가 더 많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특히 부모들이 경제적 형편이 나아졌거나 아동학대 원인 등이 해소된 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비 자격을 갖추려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데려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시설로 되돌아 온 경우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종종 문제행동(학교부적응, 흡연, 음주 등)을 일으키면서 부모에 대한 반항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시설로 복귀한 아동들의 경우 부모로부터 다시 학대를 받다 다른 시설로 재입소하는 경우가 많아 처음 버림을 받을 때보다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최근에는 아동들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보육원은 퇴소를 하고 정부로부터 일정기간 전세금 대출 등을 지원받아 자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장생활을 할 때 연고자들이 찾아와 부양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시설에서 지급한 자립정착금(디딤씨앗통장금액·후원금·자립정착금 등)을 강제로 빼앗아 가는 사례도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을 중퇴하고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이들이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며 시설 선생님들에게 전화로 어려움을 호소해와 수시로 용돈을 보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퇴소한 아이들은 대학입학을 통해 나름대로 사회로 향하는 첫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아이들의 근황을 일일이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연락이 두절되거나 '나쁜 길'로 들어서는 경우는 보육원 퇴소 동기생들로부터 제보가 들어오기도 한다.

얼마 전 보육교사가 제보를 받고 찾아간 곳은 지방에 있는 속칭 '방석집'이라는 곳이었다.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결국 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몸을 파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들을 찾으러 나선 선생님들은 막상 업주와 마주 서자 겁이 나고 기가 막혀 말문도 열지 못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경찰의 도움을 청해 간신히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한참을 설명하면서도 이 아이들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켜 본 선생님들의 가슴엔 먹먹한 슬픔만 차올랐다.

한달 뒤 그 아이들은 또 사라졌고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달 전 아이들을 데리고 있던 그 업주로 보이는 여성의 당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봐요! 아이들이 제 발로 다시 들어왔는데…이제 참견하지 마요" 이렇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아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업소에 왔다는 것을 확인까지 시키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들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세간을 시끄럽게 한 경기도 한 보육원 교사들의 아동 폭행사건에선 교사들이 도벽이 있는 아동을 훈육한다는 이유로 폭행하고 땅에 묻기까지 해 세상을 경악케 했다. 이 때문에 보육원들의 어두운 측면이 매스컴을 통해 부각되면서 전국 사회복지시설들은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생들이 훈육하는 방법의 잔혹성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런 비이성적인 교사들이 시설에 채용돼 버젓이 교사역할을 할 수 있었냐는 것이다. 전문가들과 보육원 운영자들은 보육원 교사들의 선정 기준과 복리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시설의 복지예산은 지방자치단체 이양 이후 인건비 및 종사자 처우가 지방자치단체마다 차이가 심해 교사들은 기회만 닿으면 대우가 나은 서울·경기 지역으로 이직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열악한 근무환경(2교대근무· 근로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무여건)과 자격증 남발도 이직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인터넷매체를 통해 단기간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가능해 복지에 대한 개념이나 복지사로서의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채 취업하면서 문제가 잉태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의 이직이 증가하면서 시설과 수요자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런 어두운 사례와 달리 미담들도 많이 있다. 시설을 퇴소한 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성실한 남편으로, 억척같은 엄마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후에 보육원을 다시 찾아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 봉사활동을 하는 감동적인 장면은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귀감이 된다.

또 정부 정책이 일부 강화되면서 아이들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대학을 다니거나 자신의 꿈을 조금씩 키워가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성범(24·가명) 학생은 모 전문대의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유명 레스토랑 보조 요리사로 근무하며 미래를 약속한 예쁜 애인도 사귀고 있다.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의 레스토랑을 내겠다는 야무진 꿈도 갖고 있다.

보육원 관계자는 지난 1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경제적 곤란·이혼 등으로 자식들을 쉽게 포기한 연고자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이용하거나 유흥과 과소비에 빠져 생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에 대해 국가가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법적·경제적·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게 요(要)보호아동 발생의 원인이 되며 또 이들이 늘어나는 주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신체적·정신적으로 질병에 노출된 경우가 아닌 이상 아동은 부모가 양육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아동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모 양육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했다.

■ '시사 할(喝)'은 = 앞으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잘못된 제도나 문화 등을 비판하고 우리 사회가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신설한 기획이다. 할(喝)이란 주로 선승(禪僧)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말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소리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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