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행복한 진로학교
①강도현-화려한 스펙을 버리고 골목을 누비다 
②고원형-스카우트 거절 후 찾아온 ‘아름다운 배움’ 
③윤태호-가지 않은 길에서 만난 만화 ‘미생’
④권장희-교사를 그만두고 게임중독 치유 전문가로!
⑤최혁진-그때부터 내 꿈은 협동조합이었다
⑥하종강-내게 ‘노동’은 노래였다
⑦김현수-정신과 의사, 대안학교 교장되다
⑧송인수-강은 곡선으로 흘러 아름답다
ⓒ시사IN 조남진
고원형 대표(34·위)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다니던 중 교육시민단체인 ‘아름다운배움’을 설립했다. 단체 산하에 리더십연구소도 운영 중이다.

바야흐로 ‘진로 교육’ 열풍이다.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진로 컨설팅을 하는 업체가 성업 중인가 하면 공교육 현장도 진로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1 아들을 둔 김 아무개씨(46· 서울 양천구)는 학교에서 주기적으로 보내오는 진로 교육 안내서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지난주는 화학 관련 직업·학과를 소개하더니, 이번 주에는 식품 관련 직업·학과를 소개하는 식이어서다. 과연 ‘진로=직업’일까? 직업 세계를 열심히 탐구하다 보면 진로도 보이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은 이들을 위한 강좌가 시작됐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진행하는 ‘2013 행복한 진로학교’가 그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최고의 일자리 말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 행복한 삶의 기준이 궁금한 이들을 위해 4월18일~6월4일 8회에 걸쳐 진행되는 강좌를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강좌 전문(全文)이 궁금하다면 이 단체 홈페이지(www.noworry.kr)에서 수강 신청을 하면 된다. 실시간 또는 녹화방송으로 동영상 강좌도 수강할 수 있다.

강의 제안을 받고 많이 고민했다. 나는 성공했다거나 내 길을 완성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단계랄까. 그런 나를 왜 강사로 초빙했을까도 생각해보았다. 아마 이 강의를 듣는 많은 학부모께 희망을 드리라는 뜻에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렇게 약간 ‘돌아이’처럼 살아도 먹고살 수 있구나, 뭐 그런(웃음).

나는 아름다운배움이라는 청소년 멘토링 단체를 운영한다. 리더십연구소도 함께 운영 중이다. 요즘 강남에 가면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 중 싼 것이 1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시간당 65만원 받는 고액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나는 관련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일선 학교나 교육청에 싼값에 공급한다. 여기서 생긴 수입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농어촌 청소년이나 학교 부적응아처럼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과 대학생이 일대일 관계를 맺고 서로 성장하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부터 말씀드리겠다.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사람들은 내 전공이 상담이나 복지 쪽이리라 지레짐작한다. 틀렸다. 학부에서는 법, 대학원에서는 행정을 전공했다. 점수 맞춰 대학에 가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잘못된 교육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실패 사례인 셈이다. 대학원 시절, 뒤늦게 방황을 시작했다.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지? 개미도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이런 고민을 나름 심각하게 하다가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님, 저는 꿈을 찾고 싶습니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시만 꿈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다. 교수님이 보기에 정말 한심했을 것이다.

휴가를 얻고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걷기로 했다. 처음에는 혼자 배낭 메고 꿋꿋이 걷는 나 자신이 뿌듯했다. 그런데 나주에 도착해서 밥을 먹으러 시장에 갔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팔자 좋네. 돈 있으니까 여행도 하고” 하시는 거다. 그 말 듣고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꿈을 찾는 것조차 사치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왔다.

돌아와서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탐색했다. 그러다 알았다. (활짝 웃는 본인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대학원생 시절 종로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하다 찍힌 사진이다. 너무 해맑아 보이지 않나?(웃음) 이 사진을 보며 ‘나는 남을 도울 때 행복한 사람이구나, 앞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요즘도 꿈을 찾겠다며 유럽으로 어디로 배낭여행 떠나는 친구들이 많다. 경험으로 말하자면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는 경우가 많다. 동굴을 빠져나오는 데는 한 줄기 빛이면 충분하다. 굳이 크고 환한 빛이 필요한 게 아니다. 물론 동굴을 빠져나오면 또 다른 동굴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다. 슬프지만 그것이 인생인 것 같다(웃음).

그러면서 멘토링 교육 단체를 구상하게 됐다. 이름은 아름다운배움으로 지었다. 아름다운재단 짝퉁처럼 비칠까 봐 다른 이름을 찾아보려 애썼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보다 잘 설명하는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부모님 반대가 심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일반인에게도 내가 하는 일을 온전히 설명하려면 30분은 걸린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이해하기는 무리였을 거다. 나 말고도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을 겪는 분이 많을 거다. 나는 갈등의 원인이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에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굶지 않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지 않았나. 외로워 죽는 사람은 있어도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뜻을 세워라, 바로 실천해라

내 경우 행복의 기준은 세 가지였다. 첫째, 아침에 웃으면서 출근하는 삶을 살자. 그런 만큼 강남에 있는 직장은 절대 안 가기로 했다. 출근길 2호선은 지옥 아닌가(웃음). 두 번째, 내 아이에게 말할 자격을 갖추자. “아빠는 이렇게 꿈꾸며 살았어. 너도 꿈꾸며 살아라”고 말할 수 있게. 세 번째는 나 자신을 온전히 나로서 평가하자. 왜? 난 나를 사랑하니까. 대한민국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꼭 명품 가방을 들어야 하고, SKY 가야 하고. 이게 아니라 ‘누가 뭐라든 나는 내 길을 간다’ 이렇게 살기로 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기로 결심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민단체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일단은 청소년과 대학생 문제에 집중하고자 했다. 청소년 문제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대학생 문제다. 혹시 요즘 대학생들의 꿈 1위가 뭔지 아시나? 공무원? 아니다. 꿈을 찾고 싶다는 것이 1순위다. 이 둘의 연계된 성장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는 시민사회 영역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민사회의 부가가치를 지금보다 훨씬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정부가 하는 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시민운동을 하겠다니까 교수님이 “일단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 가서 NGO(시민단체) 과정부터 밟고 와라. 거기서 학위 받아 돌아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라고 하시더라.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시민운동이 명망가 중심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밑의 활동가나 젊은 간사들이 소모되는 구조여서는 미래가 없다. 월 110만~120만원 받고 어떻게 버틸 수 있겠나. 내 꿈은 일반 간사가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시민단체를 만드는 거다. 이런 비전을 가졌기에 나는 시민단체를 하면서도 늘 공익사업과 수익사업을 동시에 생각했다. 나 자신을 소개할 때도 시민단체 사업가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단체 간사 연봉이 얼마냐고? 2000만원 수준이다. 여기까지 끌어올린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웃음).

내가 이런 비전을 얘기했을 때 주변에서는 다들 이랬다. “넌 너무 이상적이야”라고. 이렇게 말하는 친구한테 물어보고 싶었다. ‘넌 태어나 한번이라도 이상적으로 살아본 적 있어?’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현재 아름다운배움에 상근하는 활동가는 서울 3명, 부산 2명이다. 대학생 멘토도 1600명에 달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사는 대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뜻이 있으면 길은 생긴다. 내가 처음 단체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일단 멘토링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데 돈이 있기를 하나, 기업이나 단체 후원이 있기를 하나. 갑갑하던 차에 서울시가 2030 창업 프로젝트 공모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년 창업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여기에 당선돼 사무실도 인건비도 1년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 뒤 저소득층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독서 멘토링을 진행했을 때도 보건복지부에서 새로 시작한 공모전에 당선돼 책 구입 자금 3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지금 방황하는 많은 청년들은 뜻을 세우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길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뜻을 세우면 그냥 바로 실행하시면 된다. 자꾸 계산하고 따지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름다운배움 제공
아름다운배움이 주관한 ‘장돌뱅이 멘토링’ 2기 멘토들. 강원도 양구에서 열흘간 활동했다.

최근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농어촌 문제다. 얼마 전 경북 예천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전교생이 40명가량인데 그중 고1인데도 아직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있더라. 40명 중 10명가량은 맞춤법을 잘 모르고. 그뿐인가. 전국의 이혼 가정, 조손(祖孫) 가정, 다문화 가정은 전부 시골에 몰려 있는 것 같다. 게임 중독도 도시보다 시골 아이들이 훨씬 심각하다. 너무 슬픈 현실 아닌가. 이런 아이들을 꼭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장돌뱅이 멘토링’이다. 방학 동안 대학생들이 시골에 2주가량 내려가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공부도 가르치고 진로 교육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강원도 양구에서 장돌뱅이 멘토링을 진행했다. 마지막 날 학부모를 초청해놓고 아이들이 영어 연극을 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다들 너무 좋아했다.

공교육 현장에도 관심이 많다. 문제는 멘토링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자기와 연결된 대학생만 좋아하고 학교 선생님은 싫어하는 현상이 나타나더라. 아무래도 선생님은 전체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다 보니 일대일로 신경을 써주기가 어렵지 않나. 학교 부적응아에 대한 멘토링을 진행할 때도 이런 경험을 했다. 담임이나 상담교사한테도 털어놓지 않던 얘기를 아이들이 대학생 언니 오빠한테는 다 털어놓곤 했다. 결국 관계를 맺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아이들한테는 중요한 것 같다.

사람들은 나보고 묻는다. 힘들지 않으냐고. 당연히 힘들다. 하루 14시간씩 일하니까. 하지만 힘든 것과 불행한 것은 다르다.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착각하는 것 같다. 나는 힘이 들지만 행복하다. 즐기니까 지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랬다. ‘너 그렇게 살면 결혼은 할 수 있겠느냐’고. 여러분, 축하해달라. 지난 12월에 결혼했다(웃음). 아내도 시민단체에서 일한다. 그래도 가끔 외식도 하고 문화활동도 하면서 넉넉하게 산다. 내가 후원금 내는 단체만 5곳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연봉 5000만~6000만원을 받으면서도 시민단체에 후원금 1만원 내면 자기 가계가 무너질 것처럼 벌벌 떠는 친구가 많다.

내게는 미래의 꿈이 있다. 일단은 아름다운배움을 국제 단체로 만들고 싶다. 대학생-청소년 멘토링 모델을 제3세계로 확산시키고 싶은 소망이 있다. 얼마 전 캄보디아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분과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5년가량 지나면 이 단체를 떠나려 한다. 내가 오래 머물면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지 못할 테니까. 대신 농어촌 문제와 재래시장 문제 같은 데 관심이 많은 만큼 이와 관련된 유통구조를 바로잡는 일을 새로 해보고 싶다. 호박·우엉 값이 아이스크림 한 개 값만도 못하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들 마시라. 이렇게 살아도 굶어죽지 않고 결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보여드리고 있지 않나(웃음). 내가 만나본 대학생들도 돈보다는 보람을 중시하는 것 같다. 방학 중 장돌뱅이 멘토링을 할 때 차비를 주기는커녕 대학생들한테 숙식비로 10만원씩을 받았는데도 서로 참여하겠다고 난리였다. 경쟁률이 7대1이었다. 실은 나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다면,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작은 용기가 있다는 것뿐이다. 그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일본 가수 가토리 신고의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 그 가사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다(〈The one and flower in the world〉). “넘버원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 모두 원래 특별한 온리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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