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30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작은 공연장에서 재즈 공연이 열렸다. 고작 200명 안팎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서 열린 공연은 객석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홍보가 되지도 않았고 언론에서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사실 유네스코에서 정한 ‘인터내셔널 재즈 데이(International Jazz Day)’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아마도 상당수 〈시사IN〉 독자들은 이날이 무슨 날인지 모를 테니 간략하게 먼저 설명을 해드릴까 한다. 2011년 11월 유네스코에서는 4월30일을 인터내셔널 재즈 데이로 선정했다. 이들이 주창하는 바는 이렇다. ‘지난 20세기에 탄생한 문화 가운데 가장 확장성이 뛰어나고 또 특정한 범주를 묶을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하게 변화하고 성장해온 음악이 재즈다.

또 근대사에서 노예 생활을 해왔던 흑인들에 의해 탄생한 이 음악 예술은 핍박과 슬픔의 역사를 함께해왔으며, 모든 형태의 압박에 저항해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어왔다. 그러므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기리고 널리 알리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유네스코는 유엔 산하의 문화와 과학, 교육 전반에 걸쳐 그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이곳에서 매년 4월30일을 재즈의 날로 정하고 전 세계에서 공연 및 다양한 홍보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이다. 그 일환으로 거장 재즈 피아니스트인 허비 핸콕이 재즈의 날 홍보대사에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토니 베넷이나 조지 벤슨, 조 로바노와 윈턴 마설리스 같은 유명 재즈 뮤지션 말고도 스티비 원더 같은 거물급 팝 아티스트(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평소 스티비 원더는 재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공연에서도 재즈 레퍼토리를 선택해 노래하곤 한다), 모건 프리먼이나 마이클 더글러스, 로버트 드니로 같은 유명 배우들까지 재즈 데이의 홍보를 맡았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제공재즈 뮤지션 나윤선씨가 ‘재즈 데이’ 기념공연 리허설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재즈일까? 클래식과 월드 뮤직이 아니라 왜 이들은 재즈를 선택해 이를 알리려고 하는 것일까? 그건 재즈가 현재 처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재즈의 역사를 100년 정도로 본다. 초기 랙타임(불규칙한 리듬을 뜻하며, 재즈 음악의 한 형태)이 등장하던 시기까지 넓게 보더라도 100년이 조금 넘는 정도다. 그런데 그 기간 음악적으로 이루어낸 성과는 놀라울 정도인 반면 일반 대중에까지 넓게 어필한 적은 아주 드물며, 단편적인 몇몇 하위 장르에서만 산발적으로 일어났을 뿐이다.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재즈는 분명 대중 예술은 아니다. 일단 노래(Singing)보다는 악기 연주(Instrument)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어서 처음부터 접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대중성보다는 음악성과 예술성을 더 높은 가치로 두고 작품 자체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재즈는 계속 비주류 음악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 명맥이 끊기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중독성이 강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각 악기 연주자들 간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대화가 중심이 되는 까닭에 미리 작곡된 음표나 리듬만을 연주해야 하는 팝과 클래식과는 달리 변화가 자유롭다. 그리고 다른 장르와의 교류나 협업이 자유로워 클래식, 팝, 월드 뮤직에 이르기까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악과 교류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전 세계 각지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입지가 더 약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나마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재즈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유니버설이나 소니, 워너 같은 메이저 레이블 음반사에서는 과거 명반들을 재발매하는 것 이외에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리코딩을 했으며, 그중 몇몇은 어느 정도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가 드물다. 재즈는 더 이상 대중과 제작자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며 뮤지션들은 대부분 조그만 마이너 음반사와 계약을 맺거나, 자비로 음반을 제작해 활동한다. 이렇듯 재즈는 그 입지와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어가는 상황인데, 그 결과 유네스코가 재즈 데이라는 날을 정해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재즈를 생각하게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제공한국 재즈 음악의 선구자들이 모인 재즈 1세대 밴드.

우리나라도 실정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재즈 데이 관련 행사가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었고, 유럽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리는 여성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홍보대사에 임명되기도 했지만 이 땅의 재즈 신(Scene)은 아주 편협하고 미약한 토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저변과 팬 층은 과거에 비해 별반 늘어난 것이 없는데, 연주자 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기한 일이다. 시장 규모가 늘어난 것은 전혀 없는데 왜 연주자가 계속 증가하는 것일까?

모든 형태의 압박에 저항하는 음악

서울 시내에 매일 공연이 열리는 재즈 클럽의 수는 어림잡아 15~20개인데, 요즘 들어 이런 클럽에서 연주 스케줄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이야기가 종종 전해진다. 단순히 수만 증가한 것도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등장한 재즈 뮤지션들의 기량 역시 눈에 띄게 성장했고, 소화해내는 음악의 범위도 다양해졌다. 이들 중 몇몇은 홍대 앞의 인디 음악인들과 교류해 색다른 작업을 시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아예 프랑스나 독일·네덜란드 같은 유럽이나 혹은 미국 뉴욕 같은 대표적인 재즈 중심지에서 현지 뮤지션과 직접 활동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외부적인 도움과 후원도 없었으며 모두 뮤지션의 자발적인 선택과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이 땅의 재즈 신은 시장 자체의 규모와는 별도로 상당히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다만 그 움직임에 팬들과 대중매체의 호응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다.

이런 관심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는 노릇인 만큼 유네스코에서 정한 재즈 데이 같은 이벤트는 조금이라도 더 대중의 이목을 끌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날 처음 열린 국내 재즈 데이 행사는 다소 초라했고, 또 별다른 이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사무총장은 “내년에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직접 개최하는 재즈 데이 행사를 한국에 유치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물론 그런 거창한 행사도 분명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한국의 재즈 저변이 좀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면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재즈 뮤지션이나 업계 관계자들과 좀 더 긴밀하게 협조하고 교류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기자명 김희준 (〈엠엠재즈〉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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