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지방의회 유급 보좌관제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안전행정부가 유급 보좌관제는 지방자치법에 위반한다는 원칙을 하루아침에 뒤집었다”라는 엉뚱한 지적까지 곁들였다. 지방자치법에 위반되니 개정을 해서 도입하겠다는 것 아닌가. 법령 안에서의 행정 방침과 향후 입법 계획을 분간하지 못한, 반정치적 ‘막 던지기’다.

‘의원직을 수행해보니 원래 예상과 가장 다른 것이 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기초의원이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고 범위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저런 일의 예시는 여기서 생략하지만, 이 점 하나는 곱씹어보자. 프랑스는 기초지자체당 평균 인구가 2000명 이하이고,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독일(6000명 이하), 스웨덴(약 3만명), 일본(약 7만명), 영국(약 14만명)이 있다. 한국은 20만명이다. 한국의 기초의원은 확실한 ‘프로’ 정치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구미시의회 제공〈/font〉〈/div〉구미시의회 모습. 한국은 기초지자체당 인구가 20만명이나 된다.
ⓒ구미시의회 제공 구미시의회 모습. 한국은 기초지자체당 인구가 20만명이나 된다.

나는 의원 임기를 시작하며 급여를 털어 인턴식으로라도 보좌관을 두기로 했다. 역시 내 사비로 마련한 지역구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다. 가끔 내 페이스북에도 소개되었던 두 사람이 거쳐갔는데, 급여를 넉넉히 줄 수 없어서 자율근무를 하거나 주 25시간 이하로 근무했다. 그래도 이들의 도움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의회에 나가거나 지역구 사무실을 비울 때, 이들은 사무실에서 정책을 준비하고 민원인을 응대했다. 현장에 동행하면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조언해주었으며, 회의를 생방송으로 모니터링했다. 하루 일이 끝난 다음에도 함께 일을 의논하고 함께 스트레스도 푸는 벗이었다.

그러나 2011년 11월로 이것도 끝이 났다.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급여를 더 올리면 지원자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들이 사라지자 나는 다시 외로워졌고, 더 고달파졌으며, 포기한 사업은 늘어갔다.

지방의원은 부자만 될 수 있다?

언론이나 몇몇 시민단체는 ‘기존 사무조직 활용’이나 ‘상임위별 보좌관제’ 같은 어쭙잖은 대안을 내놓는다. 지난해 국회도서관 소준섭 조사관이 “국회 전문위원 검토 보고제가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하므로 이를 폐지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지자체 공무원들이 거쳐가는 지방의회 사무국은 더욱더 의원들을 힘 있게 대변하기 어려운 예속적 조직이다. 또 상임위 내 여러 성향의 의원을 한꺼번에 보좌해야 할 직원을 어디서 누가 구한단 말인가. 의원과 정치적 판단을 공유해야 할 의원 보좌관을 이들과 맞바꿀 수는 없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지방의원들에게 2006년부터 슬그머니 수당을 지급하면서 유급화한 것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라며, 유급제의 타당성을 논하기보다 비겁하게 즉자적 여론 뒤에 숨기를 택했다. 하기야 이 부자 언론이 기초의원에게 급여를 주지 않으면 결국 돈 많은 사람이 기초의원 되기 유리하다고 말하진 못하겠지. 지금도 돈 많은 지방의원은 아무도 모르는 사설 보좌관쯤 충분히 두고 생산적 의정 활동이 아닌 인맥 관리나 ‘가방 모찌(어떤 사람의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며 시중 드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동원할 수 있다. 의원이나 보좌관에게 공적 급여를 주는 것은 더 가난한 정치인을 위한 제도다.

지방의원 유급 보좌관들의 자질이 정히 걱정된다면(왜 국회의원 보좌관은 없애라고 적극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으나), 자격을 심의하는 시민위원회를 설치하거나, 이조차 못 미더우면 아예 선거 때 러닝메이트로 등록하게끔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완책까지 철저히 외면하면서 유급 보좌관제를 불경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이나 단체장과 달리, 선거에서든 의정 활동에서든 정치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 지방정치인은 정치인으로 쳐주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의원과 보좌관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반대하고, 그러면서 지방의회 사무국의 독립 기구화 같은 초보적인 개혁에도 관심 없는 분들에게 나도 ‘막 던지기’로, 그러나 스트라이크존으로 진지하게 제안한다. 이렇게 갈 거면 지방의회고 지방자치고 그냥 문 닫읍시다!

기자명 김수민 (구미시의회 의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