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익여당이 총선에서 운하 건설 계획을 슬쩍 뭉개고 가려 한다. 그만큼 운하는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이다. 이쯤 되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도 보탬이 되지 않고, 국토 환경만 무참히 파괴할 운하 공약을 버려야 한다.

내 손으로 만든 책에 관해서 내 입으로 뭐라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그래도 몇 자 적는다. 열흘 전에 〈재앙의 물길, 한반도 대운하〉라는 책을 펴냈다. 1월 말에 기획해서 필자 열여덟 명에게 원고를 받아 3월 말에는 출판기념회까지 열었으니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책을 만들었다. 그 속도를 자랑할 일은 아니다. 지난 시대의 일이지만,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일주일도 안 되어 수상 작품이 서점에 경쟁적으로 깔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한 슈퍼울트라 초고속 제작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 무렵 언론에서는 날림 번역과 졸속 출판을 비판하는 기사가 단골로 등장했다. 

그런데 ‘날림’으로 치면,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이 한참 윗길이다. 여러 학자가 운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 허겁지겁 말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단적인 예로, 처음에는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강의 수심을 9m 깊이로 파겠다고 했다가, 홍수 위험이 커진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나중에 6m로 조정했다. 그렇다면 강바닥을 긁어내서 얻게 되는 골재 채취량이 줄어들 것이고, 골재를 팔아서 공사비의 절반을 충당하겠다는 계획도 당연히 수정되어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아귀가 맞지 않아 계획 전체를 뜯어고쳐야 할 판이다. 토목건설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케케묵은 개발주의에 중독되어 앞뒤 안 재고 허술한 계획을 밀어붙인 결과이다.

운하 최고 수혜지인 문경도 “운하 건설 반대”

심지어 운하를 추진하는 측은 5년 안에 완공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일만 해도 정해진 법 절차를 밟으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사업이 한반도 대운하이다. 현행법을 초월하는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대통령 임기 안에 끝마치겠다는 발상이니, 애당초 슈퍼울트라 초고속 날림 공사를 작정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한 것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슬쩍 뭉개고 지나가려 한다는 점이다. 운하 건설이 수익성이 높고,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 실업을 해소하고, 지역 발전을 가져오는 ‘국운 융성’의 사업이라면 대통령의 공약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당선에 유리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이다. 하기는 이상할 것도 없다. 얼마 전 낙동강 물길을 따라 걸으며 지역 민심을 수집하고 돌아온 시민단체 관계자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운하가 건설될 경우 제1의 수혜지로 꼽혔던 문경에 도착해서는 돌팔매를 맞을지 몰라 불안에 떨었는데, 웬걸, 그곳에서도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단다. 여야 할 것 없이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이러한 여론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의도와 달리 이번 선거에서 한반도 대운하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쯤 되면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의 핵심 공약인 ‘경제 살리기’에도 보탬이 안 되고, 국토 환경을 무참히 파괴할 뿐인 운하에 대한 집착을 하루 빨리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는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이지만  ‘꼭 지켜야만 할 공약이 있는 반면, 지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공약도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도 ‘운하 공약은 버려도 결코 흉이 되지 않는다’면서 결단을 촉구한다.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타당성 없는 공약을 내세울 수도 있으나,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국익을 해치는 공약은 과감히 폐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학자와 지식인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데도 대운하 공약은 꺼진 불이 아니라 기어이 되살아날 불길한 불씨로 남아 있다. 국민 여론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밀실에서 추진되고 있음이 최근에 확인되었듯, 총선 고비만 넘기면 보란 듯이 부활할 것이 한반도 대운하 계획이다.

제발 내 예상이 틀렸으면 좋겠다. 운하가 없던 일이 되면 내가 최근에 만든, 전혀 날림이 아닌 그 책들은 시효가 만료되어 처치 곤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하 건설의 삽질이 시작되면 그 순간부터 국토 전체가 망가져 처치 곤란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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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상익 (편집위원·환경재단 도요새 주간)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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