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만들기’라는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찌 됐건 나는 마을 만들기를 지원하는 곳에서 일한다. 스스로 발생한 관계망 그 자체였던 마을은 이제 ‘만들기’라는 표현이 필요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특히 파편화된 현대사회의 집약체인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마을공동체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정부의 자원을 주춧돌로 활용해, 사라진 마을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사업을 벌이곤 한다. 대표적인 게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이다.

내가 활동하는 서울 성북구에서는 이제 막 ‘2013년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이 시작됐다. ‘주민 주도 행정지원’이라는 구호를 내건 이 사업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마을 활성화 활동에 대해, 행정(성북구청)에서 예산 등의 인프라를 제공하는 형태다. 작게는 동네에서 영화 소모임 등 문화동아리를 통해 이웃 관계를 맺는 활동부터, 크게는 주민들이 출자해 마을카페 따위 동네 사랑방을 만드는 활동까지, 마을을 활성화하는 크고 작은 모든 움직임이 공모 주제가 될 수 있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제안한 주제를 받아서 마을 만들기 운영위원회(주민·민간 전문가·구의원·공무원 등으로 구성)의 심사를 거친다. 여기서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등의 적절치 않은 ‘예산 따먹기’식 신청을 걸러낸다. 예산을 과도하게 잡은 경우에도 조정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올해 성북구의 경우 총 2억원의 예산이 주민들에게 ‘마을공동체 씨앗뿌리기 자금’으로 제공된다. 주민들의 제안을 통해 마을에서 공공자금이 사용된다? 관에서 알아서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던 상황과 견줘보면 분명히 진일보한 모습이다.

잘못하면 ‘선수’들만 판칠 수도

문제는 성숙도다. 활동하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정부 지원은 마을공동체에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반대로 ‘죽음의 키스’가 될 수도 있음이 직감된다. 행정 지원은 일종의 윤활유이자 마중물로 활용할 수단인데, 이에 맞춰 마을사업이 흘러가는, 목적 전치의 경향성이 나타날 우려도 분명히 있다. 지원금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면, 주민들은 사라지고 일명 ‘선수(정부지원사업 신청에 능통한 단체)’들이나 관에서 동원하다시피 모집한 곳들만 판치는 쪽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장차 이 사업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까? 아직 미지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조금씩 주민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말 정기공모 신청 마감일. 여성 주민 세 명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센터에 왔다. “처음 써본 사업계획서가 생소하고 어려웠다”라는 이들은 ‘북 맘 독서토론회’라는 주민 모임을 만들어 이번 공모에 신청했다. “지난해부터 동네 엄마들의 독서모임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아이들 학교에 동화읽기 기부활동을 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러던 중 마을 공모가 있다는 걸 알고, 우리가 자체 모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간의 경험을 마을에서 같이 공유하고 이것이 확산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신청하게 됐다.”

그들의 사업계획서는 아직 소박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지원과 무관하게 유지될 주민 모임이고 나랏돈 활용은 수단이라는 것을. ‘자녀들과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말하는 동네 엄마들의 필요와 문제의식이 활동의 출발이자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명 송주민 (성북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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