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윤미네 집〉이 아버지(전몽각)가 딸(윤미)의 성장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해 책으로 묶은 것이라면, 이 책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은 뉴욕에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필립 톨레다노가 아버지를 떠나보내기까지 3년여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사진으로 기록한 책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여섯 살이 된 필립 톨레다노는 2006년 9월4일 어머니를 갑자기 잃었다. 슬픔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그는 홀로된 아버지가 치매로 인해 단기 기억상실 증세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여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기억상실 때문에 아내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끊임없이 아내를 찾고,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려주기 위해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뒤, 아버지는 끝도 없이 물으셨다. 네 엄마는 어디 있냐고. 나는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해서 설명해야 했다. 엄마, 돌아가셨잖아요. 아버지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게냐? 왜 장례식에 날 데려가지 않은 게냐? 왜 네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나는 가보지 않은 게냐? 일련의 일들은 아버지의 기억에 없었다.”
어느 순간 아들은 어머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하는 것도, 아버지에게 계속 떠올리게 만드는 것도 못할 짓이라는 걸 깨닫는다. 아들 내외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병상에 있는 외삼촌을 돌보기 위해 파리에 가 있다고 둘러댄다.
아버지에 대한 진실 발견하기
작가는 부모 곁을 떠나 뉴욕에서 광고 아트디렉터로 일하다가 오랫동안 꿈꿔오던 열정의 근원인 사진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가 펼쳐냈던 사진집들-파산한 사무실의 풍경들을 담아낸 〈파산(Bankrupt)〉, ‘폰섹스’ 서비스업체 종사자들의 포트레이트(초상화) 사진집 〈폰섹스(Phonesex)〉, 그로테스크한 성형수술 인물 사진을 모은 〈아름다움의 새로운 유형(New Kind of Beauty)〉 등-은 대부분 사회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책에는 없지만 저자 인터뷰에 따르면 그가 아버지와 함께하는 동안 찍은 사진은 모두 합쳐 150여 장밖에 없다고 한다. 사진 찍기가 아버지와의 일상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격언 중 하나는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는 말인데,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 격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 보이지만 동시에 작가로서의 시선 역시 놓치지 않는다.
시인 손택수는 〈아버지의 등을 밀며〉라는 시에서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라며 어린 시절 목욕탕에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던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진 뒤에야 낙인(烙印)처럼 등에 새겨진 지게 자국을 발견했다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나마 진실이라도 알게 되는 자식은 얼마나 될까. 책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어림잡아 30분에 불과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 눈가에 맺힌 이슬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텅 비어 있는 소파와 작가의 표정을 통해 “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라는 지문의 의미를 깊이 되새김하게 된다.
만약 당신의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돌아오는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 한 송이보다 이 사진집을 선물해드리라고 권하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 자신을 위해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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