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이 4기 수습기자를 뽑는다. 천막 치고 길거리에 나앉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창간 6년차에 네 번째 공채다. 맨주먹으로 창업해 약소하나마 일자리까지 창출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매번 지원자 수가 불어나는 걸 보면 ‘시장의 평가’도 후한 모양이다. 신입을 뽑을 때마다 편집국은 들뜬다. 젊은 피를 맞을 기대에 선임 기자의 마음마저도 부푼다. 막내들은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것 같고.

매사가 그렇듯 행복한 가운데도 고민은 있다. 3기까지 모두 8명을 새로 뽑았는데 7명이 여성이었다. 1기에 천관율 기자가 들어온 뒤로  남성은 씨가 말랐다. 일부 기자들(그중에는 여기자도 있다)은 제발 남자 후배 좀 뽑아달라고 선배들 붙들고 읍소하며 돌아다니는데 통할지는 모르겠다. 심사와 면접에 참여해본 경험에 따르면 남녀 지원자 간 실력 차가 워낙 크다. 남성에게 가산점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실제로 다른 언론사에서는 그러는 모양이지만 내부 의견은 정리되지 않았다.

ⓒ한성원 그림
익히 알려졌다시피 여초 현상은 〈시사IN〉만이 안은 문제는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든 공공기관이 다 함께 겪는 문제다. 가만 생각해보면 ‘여초 현상’이란 말은 가당찮다. 예전에 거의 모든 직장을 남성이 점령했을 때는 남초 현상을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 않은가. 더구나 아직도 거의 모든 직종의 상층부 공기는 여성이 숨쉬기에 적당하지 않다. 공공기관의 고위직과 대기업의 임원 자리는 여전히 대개는 남성의 차지다. 

여성이 물밀듯 들어오는 걸 바라보면서 모든 직장에서 감돌게 된 불안감의 정체는 이런 거다. 여성은 잔잔한 일을 처리하는 데는 능하지만 아무래도 큰일을 결정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게 아닐까. 출산하면 오랫동안 쉬어야 하는 데다 복귀해도 일보다는 양육에 더 신경을 쏟을 테니 여성을 뽑으면 뽑을수록 조직은 손해를 보는 게 아닐까. 거칠지만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성이 우려하는 이유는 좀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남녀공학’에 다니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관문을 뚫은 이 자존감 높은 여성들의 걱정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을 염두에 둔다면 그 기간에 동등한 조건에서 입사한 다른 남성이 자신의 일을 대신 떠맡아야 한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남성 선후배의 ‘당연한 불평’을 외면하기 어려운 예민한 균형감각을 이 여성들은 갖췄다.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커리어 우먼이 늘어나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인구학자이자 마케팅 전문가인 매디 디히트발트와 언론인인 크리스틴 라손이 공동 집필한 〈빅 보스가 된 여자들〉(북돋움, 2013)은 여성의 역량이 날로 커가는 이 시대에 읽기 딱 맞는 책이다. 저자들(이후에는 편의상 그냥 저자라고 부르겠다)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상은 인사관리 차원의 고민을 훨씬 뛰어넘는 일종의 혁명이다.

200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우리 어머니는 여성이 투표권을 얻기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제 딸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 어미에게 투표했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녀 말대로 20세기에 접어들 당시만 해도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그 어떤 기본 권리조차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은 투표권, 피임할 권리, 스스로를 부양할 권리가 없었다. 여성은 오랫동안 재산이었다.

100년 만에 일어난 반전은 극적이다. 현재 미국 여성은 국가의 사유 자산 중 51.3%를 소유한다. 근본적으로 여성의 수익이 증가한 덕분이고, 남성보다 오래 살아 재산을 상속받기 때문이다. 마케팅 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여성은 가정 내 구매 결정권의 80%를 갖는다. 미국 여성의 구매력은 일본 전체 경제 규모를 능가하는 5조 달러 이상이다.

여성과 남성의 돈 쓰는 방식

<빅 보스가 된 여자들>매디 디히트발트·크리스틴 라손 지음 북돋움 펴냄
이런 현상은 미국에 그치지 않고 세계화되어간다. 영국에서는 2025년이면 여성이 총 개인자산 중 60%를 가지게 된다.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강국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여성을 경시해온 중동 국가에서조차 여성의 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도 수만명의 야심만만한 여성이 창업 준비를 서두른다. 여성은 산업경제에서 지식경제로 전환하기 시작한 이 세계에서는 자기들이 훨씬 적합한 모델이라는 걸 각종 공개된 시험에서 실력으로 증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은 현대에 들어와 생존을 넘어서 경제적 독립을 얻고자 싸워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독립투쟁은 계속되지만 그 맨 앞에 선 여성들은 이제 인간 욕구의 맨 마지막 단계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참이다. 세상을 바꾸는 중심에 여성이 섰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여성이란 거인은 깨어났다. 돈과 실력을 거머쥐고서. 그래서 이 책의 원제도 Influence, 곧 영향력이다.

문제는 여성의 힘이 이토록 커졌는데도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은 데 있다. 대부분의 조직은 아직도 헌신적인 전업주부가 집에 있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직장에서 남성은 더 힘들고 여성은 눈치를 본다. 남성은 직장에서 죽도록 일하고 집에서도 가사를 도와야 한다. 2008년 미국 가정연구소에 따르면 일과 생활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느끼는 남성은 45%로, 39%라고 답한 여성보다 많았다.

대공황 이래 이혼율을 극심하게 끌어올린 이런 압력은 먼저 공공정책에 충격을 가했다. 2002년 캘리포니아 주는 유급 가족휴가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 노동자는 1년에 최대 6주의 유급휴가를 내고 갓 태어난 아기와 유대감을 쌓거나 아픈 가족을 돌볼 수 있게 됐다. 2008년 6월 미국 하원은 공무원 법을 개정해 지금 미국 공무원은 캘리포니아 주의 노동자와 같은 권리를 누린다. 역할 교체가 아니라 역할 재발명이 일어나는 중이다.

여성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난동을 부리지는 않는다고 해도 남자들은(간혹 여성들도) 흔히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어느 한쪽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전투적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 모임인 세계 경제포럼이 2007년 내놓은 〈세계 성차 보고서〉는 그런 생각이 근거 없는 오해라는 걸 증명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 경쟁력은 그 나라의 여성이 지닌 재능의 육성과 활용 여부에 좌우된다’. 여성의 존중 여부와 부의 증가는 정비례한다. 예외란 없다. 노동력의 절반을 사장하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저자는 여성이 돈을 쓰는 방식은 남성과 사뭇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와 금융 서비스 기업인 알리안츠와 여론조사 기관인 해리스 인터랙티브는 공동 심층조사를 통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남성은 ‘돈은 곧 자유’라고 생각했다. 여성은 압도적인 숫자가 돈의 가치를 ‘안정’이라고 여겼다. 설문 참가자의 표현에 따르면 돈이 생기면 남자는 사냥을 한다. 남성 중심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어째서 성접대가 성행하는지 알려주는 연구다. 여성이 두 번째로 꼽은 돈의 가치는 ‘가족과 친지의 부양’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자선펀드를 운영하는 한 전문가는 여성은 번 돈의 60%를 가족 부양에 쓰지만 남성은 30%만 쓴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성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상은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라고 장담한다. 가족과 소수자가 훨씬 행복해지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남성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여성의 사례가 많이 실렸다. 평생 열심히 일해서 자녀를 가르치고 말년에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가진 재산을 모두 내놓는 김밥 할머니가 넘쳐나게 된 셈이다. 여성이 배포가 없다는 것은 사냥꾼의 가치일 뿐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에 불안해하기보다는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남녀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공공정책과 기업의 문화를 새로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조언한다. 남성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줄 필요는 없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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