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이 지면을 통해 담배 한 개비 크기의 비디오카메라를 소개한 적이 있다. (‘테이저건 만든 회사의 으스스한 신제품’ 참조). 바로 전기충격기 테이저건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테이저 인터내셔널이 내놓은 ‘엑손 플렉스 비디오카메라’다. 이 제품은 경찰관의 선글라스에 장착돼 약 2시간 분량의 비디오를 저장할 수 있다. 법 집행 현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경찰관의 시선에서 녹화할 수 있는 이 제품이 실제로 보급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궁금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년이 지난 요즘, 실제로 이 제품을 도입해 사용한 미국 지방경찰의 사례가 공개됐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근교 리알토 시의 월리엄 파러 경찰서장은 1년 전 자청해서 이 실험에 나섰다. 그는 비디오카메라로 경찰관의 활동을 낱낱이 기록하는 것이 시민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 검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경관들에게 비디오카메라를 착용하게 하고, 이후 시민의 불만 접수와 불미스러운 사고가 줄어드는지 측정해보기로 했다.  
인구 10만명 남짓한 이 도시에 근무하는 제복 경관 54명 중 절반은 2012년 2월부터 이 카메라를 착용해야 했다. 카메라를 착용해야 하는 경관은 매일 무작위로 선발됐다. 물론 “빅브러더의 감시를 받기 싫다”라며 거세게 저항하는 경관도 있었다. 하지만 파러 서장은 “요즘 시민들이 경찰에게 불리한 장면을 몰래 찍는 경우가 많지 않나. 차라리 경찰 쪽에서 상황을 완벽하게 찍어놓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라고 설득했다.   모든 행동 찍히는 프라이버시의 종말?  
경관들은 시민과 접촉 시 반드시 카메라를 작동해야 했다. 근무를 마친 경관은 경찰서에 돌아와 이 카메라를 충전기에 꽂기만 하면 된다. 카메라에 담긴 내용이 자동으로 ‘evidence. com’이라는 인터넷 클라우드 서비스에 업로드돼 증거 자료로 보관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단순히 법규를 위반한 시민을 검문하는 동영상뿐 아니라 긴박하게 범인을 뒤쫓는 영상 등이 축적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카메라가 도입되고 1년 만에 시민들의 경관에 대한 불평 신고가 88%나 줄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관이 법 집행을 위해 무력을 사용한 경우도 60%나 감소했다.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한 시민들도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카메라가 겉으로 드러나게 디자인됐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고 구글 글래스 같은 스마트 기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된 세상을 상상해봤다. 상대방의 안경이나 시계 등에 달린 카메라가 나도 모르게 나의 모습을 항상 촬영하고, 이를 즉시 인터넷에 올리는 세상이 올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양해 없이는 촬영을 못하게 하는 방법이 나오겠지만 빈틈을 타서 사방에서 모습이 찍히고 내 목소리가 녹음당하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프라이버시의 종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다 카메라가 되는 세상이 될 테니 말이다.   어쨌든 경찰이 법 집행 과정에서 카메라를 착용하는 것은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공공기관의 법 집행은 투명할수록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자신의 말과 행동에 좀 더 신중해질 것이다. 최근 테이저 사에는 미국 전역의 경찰로부터 이 비디오카메라의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보급될 구글 글래스도 테이저 사의 엑손 플렉스 비디오카메라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오리라 예상된다.
기자명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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