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화(46)·박지현(42) 부부는 각각 사교육 업체를 운영한다. 학원을 운영하다보니 신경 쓸 일이 많다.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남편 장씨는 숙면을 못하고 뒤척이며 잘 때가 많았다. 몸은 늘 물 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그런 장씨가 지난해 9월부터 잠을 잘 잔다. 13년 아파트 생활을 마감하고 나서다. 단잠을 자다보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장씨 본인도 놀랐다. 그는 “공간의 변화를 몸이 먼저 아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부부는 미술을 전공했다. 도시인의 삶이 흔히 그렇듯 결혼하면서 아파트 살이를 10년 이상 했다. 아파트 살이는 편해서 좋았다. 하지만 집에, 공간에 쉽게 정이 가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 잠만 자는 곳이었다.

‘집을 지어서 살아볼까?’라는 생각을 일찍부터 했다. 집짓기 열풍이 불기 전부터 부부는 바람이 들어 땅을 보러 다녔다. 경기도 외곽을 살피다 직장과 가까운 판교에 땅을 샀다. 경제적으로 무리를 했다. 일단 저질렀다. 대출을 받아 235㎡(71평)짜리 땅부터 사뒀다.

서둘지 않았다. 힘들지만 행복한 여정에 나섰다. 두 사람은 건축 관련 책을 읽고, 인터넷 정보를 뒤지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집짓기에 관한 한 부부는 얼리어답터의 길을 걸었다. 먼저 건축 관련 책을 섭렵했다. 평론집도 사보고, 건축주가 집을 지으면서 쓴 책도 사봤다. 판교에 짓고 있는 집을 무턱대고 찾아다녔다. 판교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집이 많아서 그 자체로 생생한 건축 입문서였다. 주인도 없는데 불쑥불쑥 찾아다녀, 현장 소장과 친해진 적도 많다. 부부는 판교 일대 어떤 건축가가 어떤 집을 지었는지 위치와 모양새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부부는 오랜 준비 끝에 건축가를 찾아 나섰다. 부부가 합의한 집 콘셉트는 딱 하나, ‘예쁜 집’보다 ‘건강한 집’을 짓고 싶었다. 건강한 집을 설계할 적임자가 누구일까? 부부는 한 건축가를 떠올렸다. 건축학과 교수들이 자기가 살 집을 맡겨 지은, ‘살구나무집’으로 유명한 조남호 솔토건축 대표다.

집은 동네와 마을의 일부다

조 대표는 국내 목조건축 분야 개척자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목조건축을 시작했다. 단순한 계기였다. 설계 사무소의 인원을 감축하지 않고 위기를 벗어날 복안으로 시공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하고 싶었다. 보통 건축 설계 사무소는 설계와 감리만 맡고 시공사는 따로 있다. 건축부터 시공까지 가능한 분야로 조 대표는 목조건축을 택했다.

그때만 해도 목조건축 하면 으레 한옥을 떠올렸다. 한옥과 더불어 목조건축의 또 다른 흐름이 조 대표가 선보인 서양식 경골 목구조다. 집짓기 열풍을 몰고 온 땅콩집도 경골 목구조다. 조 대표는 교원그룹 도고연수

원 같은 대형 건물도 목조로 설계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때 경골 목구조와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결합시키는 시도로 건축학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부부 건축주가 내민 ‘건강한 집’이라는 숙제를 받아든 조 대표는 난감했다. 먼저 판교라는 지역 때문이다. 판교는 택지지구로 평면이다. 주변 환경을 반영한 설계 모티브가 전혀 없었다. 대신 주변은 개성 강한 집들이 뚝뚝 떨어져 놓여 있었다. 판교는 여러 건축가들이 뛰어들어 지은 집이 많다. 개중에는 제각기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집들도 있다. 한때 재테크 수단으로 아파트를 소유했듯, 이런 집들도 내 소유라는 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다.

조 대표는 단독주택 역시 소유보다는 공존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집이 만들어진 순간, 내 집이기보다 동네와 마을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웃과 마을과의 공존을 중요하게 여겨 가장 먼저 마당을 떠올렸다. 마당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부터 시작했다. 판교 집들은 ‘무늬만 마당’인 집이 적지 않다. 주차공간을 확보하느라 파라솔 하나 놓을 만한 공간만 남겨두는 식이다. 공존을 추구한 집은 옆으로 마당을 넓게 두었다.

집 규모는 1층 99㎡(30평), 2층 66㎡(20평)로 목조건축이다. 홑집이 아닌 두툼한 평면으로 단열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1층에는 거실과 부엌, 사랑방을 배치했다. 실내에 들어서면 한옥의 맛이 느껴진다. 경골 목구조에 한옥의 기능을 담는 ‘목조건축 2.0’을 추구하는 건축가답게, 기둥과 보를 노출해 공간을 나누었다. 기둥과 보로 구분된 공간은 열렸지만 닫힌 입체감을 준다. 특히 1층에 배치된 사랑방이 눈에 띈다. 거실보다 15㎝ 높은 문턱을 두고 사랑방이 놓여 있는데 문턱은 앉아 있기 편한 높이다. 부부는 이 공간에 가구를 배치하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사랑방 옆문은 출입문 쪽으로 통하는데, 어른 키 절반 정도 높이로 낮게 냈다. 옛 집을 드나들 때처럼 고개를 숙여 통과하게 했다. 거실보다 15㎝ 높은 문턱은, 고개를 숙이고 사랑방을 나오면 신발을 신을 때 걸터앉을 수 있는 툇마루 노릇도 한다.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다. 계획은 있다. 금실이 너무 좋아 일부러 늦추는 것 아니냐고 묻자 마주보며 웃기만 했다. 전공도 같아 늘 소통하기를 바란다. 음식을 만들면서도 얼굴을 마주보며 말하고 싶다는 바람을 반영해 아일랜드 식탁을 일자로 정면에 두었다. 건강한 집을 표방한 콘셉트에 맞게 에너지 효율을 따져 전체적으로 큰 창을 내지 않았다. 통창은 없지만 실내가 넓게 느껴지는 개방감이 든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 층고를 높게 했기 때문이다. 낮은 층고와 높은 층고 구분은 화장실이 한다. 벽에 붙이기 마련인 화장실을 계단 옆에 원형으로 배치했다. 마치 조형물 같은 원형 화장실이 기둥처럼 시원하게 2층까지 뻗어 있다. 문을 열어보기 전에는 화장실인 줄 모른다.

층고가 높으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2층 지붕에 일종의 에어포켓 장치를 두었다. 석빙고에 쓰인 원리에서 착안했는데 지붕 가운데를 아치형으로 만든 것이다. 더운 공기를 가두었다가 가끔씩 천장을 열어 밖으로 빼주면 아래쪽 찬 공기가 순환하면서 냉난방 효과가 높아진다. 2층은 생활공간으로 침실, 드레스 룸, 서재 등을 배치했다. 에너지 효율 때문에 밖으로 큰 창은 두지 않았지만, 내부에는 소통을 위한 창을 내 1층과 2층이 통하게 했다. 주변의 집들은 여러 색의 마감재가 쓰여 외양부터 화려하다. 하지만 이 집 외벽은 회색 시멘트 벽돌로 마감했다. 화선지 색처럼 담백하다. 건축 과정도 담백했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여백의 화선지 상태에서 출발했다. 큰 집인지, 작은 집인지 규모도 정하지 않고 건축가와 건축주가 소통하면서 작업했다. 지난해 9월 입주한 부부를 위해 조 대표는 건축 모형을 선물했다. 조 대표가 받은 선물도 있다. 그는 “건축주가 이 집에 산 뒤 숙면을 한다는 말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라고 말했다.

단독주택에서 첫 겨울을 난 부부는 아파트에서 살 때와 똑같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편함을 뛰어넘는 만족감이 더 크단다. 집짓기를 끝낸 소감을 굳이 묻지 않았다. 부부 얼굴에 묻어나는 미소에 백 마디 말보다 더한 소감이 담겨 있었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