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미증유의 지진이 동일본 일대를 흔들었다. 이후 몰려온 쓰나미는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강타했다. 당시 후쿠시마 현 이타테무라(飯館村)에 살고 있던 낙농가 하세가와 겐이치 씨(60)는 이러한 상황을 후세에 반드시 전해야 한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하세가와 씨는 이타테무라가 일본 정부가 정한 피난 지역은 아니었지만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고농도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그는 주민집회를 열어 방사능 오염의 현황을 설명하고 피폭을 피하는 방안 등을 얘기했다. 후쿠시마 현에 가설 주택의 제공을 강력히 요구했고 주민들이 알아서 피난을 할 수 있게 도왔다. 


하세가와 씨는 주민들이 떠난 마을을 순찰하면서 자신의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현실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는 직업 사진가는 아니었으나 자기 일상과 더불어 마을의 풍경, 이웃들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후 좀 더 상위 기종의 카메라로 교체했고, 비디오카메라도 구입해 사진만이 아니라 영상으로도 지진 이후의 삶을 차분히 기록해갔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은 지난 2년간 1만 장을 넘었고, 영상기록은 DVD로 150장이나 되었다.

영상에는 여러 회의나 집회, 설명회 모습도 담겨 있다. 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발언을 하는가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기록을 기초로 장래에 마을이나 현, 일본 정부가 지진과 방사능 피해에 어떻게 대응했고, 이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세가와 씨는 “검증 과정을 전문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참된 검증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지진과 원자력 재해의 피해 당사자로서 기록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지진 후 이타테무라의 촌장은 방사능이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괜찮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위험하다”라고 발언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오히려 멀리했다. 그뿐 아니라 “방사능의 리스크보다 피난을 가는 리스크가 훨씬 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촌장은 자기 아이들과 손자들을 신속히 피난시켜 놓았다. 마을 아이들은 피난을 생각하지도 않던 시기였다.

정부가 발표한 방사능 수치의 오류 발견

후쿠시마 현이 2012년에 발표한 ‘현민의 외부 피폭 예측 선량’을 보면 일찍 피난한 후타바 군의 사람들보다 피난이 늦었던 이타테무라 사람들의 외부 피폭이 높게 나타났다. 2012년 9월11일 후쿠시마 현은 2011년부터 2년간 조사를 통해 아이들 425명이 갑상샘에 이상이 있다고 발표했다. 후쿠시마 현립의대 야마시타 준이치 교수 등은 이들에 대해 2차 검사는 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2012년 11월7일 문부과학성이 “모니터링 포스트의 계기 설치에 잘못이 있어 실제보다 10% 정도 낮은 수치로 발표했다”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문부과학성은 주민들의 지적이 있어 수치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데이터를 제공한 사람이 하세가와 씨였다.


“나는 반년 전부터 수치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지역의 모니터링 포스트 수치가 2.4μSv(마이크로시버트)였는데, 30m 떨어진 지역에서 실측을 해보니 5.3마이크로시버트였다. 또 다른 지역의 모니터링 포스트의 수치는 4.6마이크로시버트였는데 30m 떨어진 지역에서 실측하니 9마이크로시버트로 나왔다. 실제 수치의 반만이 기록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잘못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왜곡할 우려가 있었다.”

하세가와 씨는 제염(방사능 오염물질 제거)의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방사능 제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타테무라는 75%가 산림이다. 대부분의 민가는 산을 등지고 건축되었다. 주택지나 농지를 제염하더라도 산을 제염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타테무라의 당면한 목표는 방사능의 연간 피폭 선량을 5mSv(밀리시버트)로 낮추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장차 1밀리시버트를 목표로 한다. 5밀리시버트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이주 의무 라인이었다.

하세가와 씨의 장남은 후쿠시마 시내에 만들어진 부흥목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시내는 방사능 선량이 낮아 목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고향은 아니지만 생업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우리는 나이를 먹었으니 이 땅을 떠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의 장래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하세가와 씨는 오늘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일본 전국을 돌며, 세계를 돌며 하세가와 씨는 자신의 고향 이타테무라에서 벌어진 원전 사고의 피해 현황과 일본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과 피해 방치 상황을 고발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기자명 안해룡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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