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랭크 지음, 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격식 차리고 예절 지켜가며 순서에 따라 치러야 하는 식사가 있는가 하면, 가벼운 자세로 허기를 달래면 그만인 식사도 있다. 책에도 정색하고 차례대로 정독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 곳이나 펼쳐 읽는 책이 있다. 물론 전자가 무조건 더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정식이 설렁탕 한 그릇보다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 없듯이. 일상생활과 사회현상에서 비용 편익에 바탕을 둔 경제학적 요인을 읽어내는 이 책은 후자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반대편 차선까지 막히는 건 왜 그럴까? 반대편 차선 운전자들은 현장에 접근하면서 비용 편익을 계산한다. 현장 구경에 드는 비용은 몇 초 동안의 지체일 뿐이니 차를 서행시키며 구경한다. 그런데 수백, 수천의 다른 운전자들도 같은 계산을 한다. 그것도 현장에 접근하는 순서대로 한 명씩 계산한다. 결국 차 한대 당 몇 초의 지체가 30분이나 한 시간까지 늘어난다. 개인의 비용 편익 계산 결과가 집단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례다.

고래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데 닭은 그렇지 않은 까닭은? 장황한 생태학적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만 경제학적 사고에 따른 대답은 간단하다. 고래 숫자가 줄어드는 까닭은 아무도 고래를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바다를 맘대로 넘나드는 고래와 달리 세상 대부분의 닭은 양계장에 있으니, 닭은 안전하고 고래는 위험에 처해 있다.

문화적 요인도 중요하다. 일본인들이 결혼식에 들이는 돈은 미국인들의 약 두 배에 달한다. 하객 한 사람에게 들이는 비용도 높고 300명 이상의 많은 하객들을 초청한다. 일본이 인맥에 크게 의존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그 사람과 사회적 조화를 유지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니, 하객 초대는 인맥 유지를 위한 일종의 투자다. 결혼식에 들이는 비용에 대해 비용 편익 계산을 하는 셈. 우리의 결혼식 문화가 떠오른다.

운전자들은 단지 몇초 동안 교통사고 현장을 구경한다고 계산하지만, 수백 수천의 운전자들도 같은 생각을 해 반대편 차선은 막히고 만다.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예가 하나 더 있다. 공무원들이 방어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을 좋아한다는 사실. ??유나이티드 항공사가 샌디에이고와 샌안토니오 사이를 운행하는 것을 금한다??는 표현보다, ??유나이티드 항공사가 샌디에이고와 샌안토니오 사이에 지속적인 항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공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표현한다. 평이한 문장이 규정이 되는 순간부터 공무원들은 자신의 책임을 최대한 은폐하기 위해 노력한다. 간결 명료한 표현과 의사소통이 공무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비용 편익 계산을 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비용은 결국 시민 몫인가.

이 책은 위와 같은 사례들로 가득하다. 각 사례에 나와 있는 설명 외에도 뭔가 다른 설명, 다른 원인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저자도 이 책에 제시돼 있는 설명들이 모두 타당하고 올바른 건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다만 ??인간과 동물의 모든 행동방식에 알게 모르게 비용 편익 원리가 작용하고 있으며, 일상에서 접하는 경험과 현상에 담긴 다양한 구조와 패턴을 발견함으로써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발견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지적 모험??이라고 말한다.

사족 하나. 저자는 이 책의 인세 수입 절반을 자신이 재직 중인 코넬 대학교의 존 나이트 작문학교에 기부하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나 수업 자료에서 힌트를 얻어 이 책을 썼기 때문이란다. 개인적 비용 편익 계산에만 따르지 않고 일종의 공익에 기여하는 행동방식도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기자명 표정훈 (출판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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