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하는 뇌〉 이케가야 유지 지음 김성기 옮김 리더스북 펴냄
나이 들면 건망증이 심해진다며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르신이 많다. 중년에 막 이른 사람 가운데도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며 지나간 청춘을 아쉬워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나이 들면 건망증이 심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건 통념이자 막연한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나 청년도 나이 든 어른과 다를 바 없이 자주 깜빡 잊어버린다. 단지 그렇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을 뿐이다. ‘나는 아직 나이가 들지 않았으니 기억력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믿으니 말이다.

더구나 아이와 어른은 인생에서 쌓아온 기억의 총량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쌓은 기억이 100개이고 어른이 쌓은 기억이 10만 개라고 해보자. 100개에서 특정한 기억 하나를 찾아 끄집어내는 게 빠를까? 아니면 10만 개에서 하나를 찾아 끄집어내는 게 빠를까? 당연히 100개 쪽이 빠르다. 기억의 양도 많을뿐더러 기억 사이의 그물망이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어른이고 보니, ‘왜 이렇게 그게 생각이 나지 않지?’ 고민할 때가 많은 건 당연하다.

우리에게 무지개는 어디까지나 ‘일곱 색깔’이다. 그런데 무지개가 다섯 색깔이거나 여섯 색깔인 곳도 있다. 바로 영국인과 미국인에게 무지개는 여섯 색깔, 프랑스인과 중국인에게는 다섯 색깔이라는 것. 나라에 따라 무지개 색깔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건가? 물론 그렇지 않다. 태양빛을 분광 분석하면 빛의 파장은 분명하게 나눌 수 없는 연속량이다. 결국 어디에서나 똑같은 무지개지만, 문화적 배경에 따라 색깔 수가 달라 보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문화적 배경이라는 색안경을 쓰는 셈이며, 뇌는 사실이 아닌 확신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

뇌를 평생 10%만 써도 되는 까닭

그런 뇌를 우리는 평생 10% 정도만 사용한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나머지 90%를 다 사용하면 지구 최고의 천재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현재 인간의 몸을 조절하는 데는 뇌의 10%만 사용해도 충분하다고 한다. 몸보다 뇌가 더 중요한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커졌지만, 뇌도 어디까지나 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뇌는 몸을 통해야만 외부 환경과 접촉할 수 있으며,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뇌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리더스북 제공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개인이 쌓은 경험을 서랍 열듯이 꺼내는 것과 비슷하다. 경험이 많아지면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뇌는 자기합리화의 달인이다. 꼭 갖고 싶은 물건이 둘 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 그 중 하나만 사가지고 왔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산 물건의 장점을 찾고 내가 사지 않은 물건의 단점을 찾는 일이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런 합리화는 결혼이나 중요한 비즈니스 등 큰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단 말이야! 우리 마누라가 그래도 좋지.’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셈이다. 이렇듯 뇌는 후회를 싫어하는 자기 유지 본능을 갖고 있으며, 뇌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변명을 자주 한다.

뇌가 컴퓨터와 다른 점은 아무래도 주관적 가치 판단이 개입한다는 게 아닐지 싶다. 눈으로 전달된 정보를 곧바로 처리하는 1차 시각 영역에서부터 주관적 가치 판단이 개입한다. 예컨대 정가 9900원에 판매하는 책이 있다고 해보자. 고작 100원 차이지만 정가 1만원에 비해 많이 저렴해 보인다. 자릿수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액수 차이보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차이가 상당히 커진다. 약간의 할인을 통해 자릿수 하나를 줄여 판매하는 것은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셈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뇌는 결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오히려 합리화와 변명에 능하고 자기 기만과 선입관에 빠지거나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오랜 세월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뇌가 터득한 생존 기술이 바로 그러한 것을 말이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