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대선 열기는 아직 시들하다. 이는 지난 2002년 제16대 대선 때와 비교하면 사뭇 다른 현상이다. 당시 이즈음에는 게시판마다 논객들이 쓴 대선 관련 글이 연일 쏟아져나오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비롯한 대선 후보 팬클럽 회원들이 인터넷 곳곳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는 등 치열한 사이버 선거전이 벌어졌다.

사이버 대선전이 맥 빠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 관련 선거 규제법이 엄격해진 데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언론 매체들은 인터넷이 이번 대선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앞 다퉈 내놓았다. 정당들 역시 2002년의 경험을 교훈 삼아 진작부터 사이버 선거전에 대비하며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포털사이트와 블로그,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대선 판도를 가를 킹 메이커가 되리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포털의 언론 기능을 제어하기 위한 각종 입법안이 제출되고, 대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블로그를 개설하거나 유명 블로거 초청 간담회를 개최하고, 동영상 UCC 채널을 얻기 위한 대선 캠프 간 추첨 이벤트까지 성황리에 벌였던 것도 모두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아직까지는 2002년 같은 치열한 사이버 선거전 양상이 재현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가 마련해놓은 대선 사이트 방문자 수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이다. 유명 블로거들을 향한 대선 후보들의 다양한 구애 전략에도 불구하고, 블로거들 사이에서 대선은 주요 이슈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동영상 전문 사이트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대선 UCC 코너는 선거 캠프에서 만든 대선 후보 홍보 영상물의 전시장에 머무를 뿐 네티즌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언론재단의 연구 발표에서도 주요 대선 후보들의 동영상 UCC 중 47.4%가 500회 미만의 저조한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사이버 대선전이 시들한 이유는 먼저 선거관리위원회의 UCC 가이드라인 등 더욱 엄격해진 인터넷 관련 선거법 규제에서 찾을 수 있다. 선관위의 강력한 규제 방침이 네티즌에게 자기 검열 효과를 불러일으켜 대선에 침묵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이와 관련한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모바일 선거인단을 모집하면서 블로그 전문 사이트인 미디어몹을 통해 100개의 블로그에 20만원씩 광고비를 지불하고 홍보 배너를 다는 이벤트를 벌였다. 그런데 한 일간지가 이것이 “기부행위로 선거법에 저촉된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썼고, 이에 당황한 블로거들이 황급히 홍보 배너를 내린 것이다. 결국 선관위의 확인 결과 블로그를 통한 배너 광고는 현재 포털 사이트에서 하고 있는 정당의 배너 광고와 마찬가지로 선거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혀졌지만, 네티즌이 선거법 규제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냉랭한 오프라인 선거 분위기도 한몫

2002년에 비해 인터넷 지형이 많이 달라진 것이 사이버 대선전을 시들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와 달리 보수와 진보 세력이 사이버 공간을 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2002년과 같은 인터넷 돌풍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또 모든 후보 진영에서 사이버 대선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선거 전략이 될 수 없다. 여기에 각 후보 진영에서 인터넷에 접근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UCC나 블로그가 네티즌의 직접 참여를 통한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대선 후보들의 일방적 홍보의 장,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역대 어떤 대선보다도 냉랭한 오프라인의 선거 분위기가 인터넷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임을 간과할 수 없다. 오프라인에서 대선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는 마당에 인터넷에서만 대선 열기가 자가발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의 영향력에 대해 방심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대선까지 남은 2개월이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창출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