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최근 한번 읽어보라고 스물여덟 살의 젊은 여성 블로거가 보내온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386 세대라고, 자기들이 독재정권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스스로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사장님들은 참으로 뻔뻔했어요. 밥도 안 주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 2500원씩 주면서 그걸 착취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다니며 화장실도 못 가고 방광염에 걸려가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그녀의 눈에 비친 민주화 세대의 모습이다.

이 블로거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젊은 시절 군부 독재와 정면으로 맞섰던 475, 또 386의 지금 모습은 초라하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던, 그들의 모습은 간데없다.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눈이 벌겋고, 펀드에 넣은 돈이 날아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중늙은이만 남았다. 술자리에서 자기 회사 직원이 노조를 만들면 그날로 회사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옛 ‘동지’도 봤다.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다가 끝내 공천에서 탈락한 뒤 눈물을 흘리며 탈당 기자 회견을 하는 옛 투사의 모습이 추하다.

중국 소설 〈창랑지수〉에 나오는 주인공 지대위의 모습 그대로이다. 〈창랑지수〉는 베이징 의학원을 나온 순수한 청년 지대위가 돈과 권력에 길들여져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직장 상사가 지대위에게 “사나이는 자기를 굽힘으로써 자신을 펴는 걸세. 펴고 있는 사람 중에 굽히지 않았던 사람 봤는가”라고 말하는 대목이 압권이다.

때 묻고 후줄근한 475 중의 한 사람으로서 최근에는 뜻하지 않게 향수에 젖는 일이 잦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보수 언론이 전봇대를 휘두르며 ‘이비어천가’를 부를 때만 해도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다’ 하는 정도였다. 영어 몰입식 교육이라는 초현대 주제가 나와서 그마저도 금세 잊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세다. 7080 콘서트 저리가라다. 물가를 잡겠다며 짜장면 값을 단속하려고 공무원이 시중에 풀렸다. 짬뽕 값도 잡아달라는 네티즌의 댓글이 달리는 것만 유신 때와 다르다. 군 최고 지휘관의 입에서 북한 선제 타격론까지 나왔다. 반공과 멸공의 완벽한 부활이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입을 통해 남북 관계는 정확하게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작성 시절로 돌아갔다.

관악경찰서 정보과 형사 세 명이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성향을 조사해 물의를 빚었다. 기관원, 너무 오래간만에 들으니 반갑기조차 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명박 정부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재주 하나는 비상하다. 아무래도 475와 386에게 젊음과 야성을 돌려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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