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를 부인하는 견해도 있지만, 교활한 살인범은 체포되더라도 자기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경우 범행에 대한 주저함도 없을 것이다. 사형제도에 대한 시각을 재점검해야 한다.
안양 초등학교 어린이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체포되자 모두가 범행의 잔인함에 놀랐다.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의 일가족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양 사건의 범인이 체포되어 이제는 이호성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추격자〉에서 살인범의 죄책감 없는 살인 행위가 연상되면서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살인 사건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크게 증가했다. 1997년까지는 해마다 살인 사건이 500~800건 발생했으나, 1998년에는 966건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1000건이 넘는다. 여기에는 살해된 실종자  수 등은 제외한 것이다.

반면 살인범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관대해서 사형선고 건수가 살인 범죄의 증가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다. 구체적으로는 2000년 20건의 사형 선고가 있었으나 2002년 이후에는 해마다 5~8건 정도로 사형을 선고하는 실정이다. 사형 선고의 감소는 신중한 판결 경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현실과 사형 선고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교정·교화 불가능

연쇄살인범은 범행 동기가 재산이나 보복이 아닌, 범죄심리학에서 사이코 패스로 부르는 유형이 많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Robert D. Hare)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과장된 자존심과 자만심의 소유자인 반사회 인물이다.

이들은 자기의 범행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기 범행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동정심이 전혀 없다. 또한 다중인격을 지녔기 때문에 상대방을 교활하게 속일 수 있으며, 죄의식이 없으므로 범행을 연쇄적으로 저지른다. 이들에 대한 교정과 치료는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재범률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미국 연쇄살인범의 90%가 바로 사이코패스로 알려졌다.

이러한 인간 유형의 등장은 형사정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 관념으로 판단할 때 범죄자는 자신의 범행을 반성도 하고 죄의식도 느낄 것이라는 점을 상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정과 교화를 목표로 하는 형사정책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범행을 즐기는 듯 보이는 예외적인 범죄자 유형에 대해 이러한 정책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험성만 증대시킨다.

사형 규정 최소화하되 규범력 보여줘야

지난 10년 동안 집행을 하지 않는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존치론과 폐지론의 논리는 범죄예방론 대 인도주의적 사고를 토대로 전개된다. 문명국의 형사정책이 죄인을 제도적으로 살해하는 방법이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있는 반면, 잔혹한 범죄 행위에 대한 응징 없이는 그러한 범죄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현실 정책으로서 형사정책은 흉악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시각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사형제도는 축소의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법 규정상 너무 많은 사형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사형 규정은 속히 삭제하고 최소한으로 두되 규범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형 집행이 갖는 잔인성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공동체가 안전감을 느끼면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행위에 상응하는 형벌이 필요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를 부인하는 견해도 있지만, 교활한 살인범은 체포되더라도 자기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경우 범행에 대한 주저함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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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박상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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