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은 작정하고 만든 최루 영화다. ‘눈물 흘릴 것을 겁박한다’(허지웅 영화평론가)는 평가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봐도 계속해서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게 된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빠와 7세 딸 사이의 애틋함이 〈아이 엠 샘〉의 그것처럼 집요하게 관객을 쫓아다닌다. “아빠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맙습니다.” 7세 아이의 생일에 주고받는 말이다. 이환경 감독은 “영화를 본 후 여기저기서 사랑한다는 말들이 들렸으면 좋겠다. (보시고) 아빠 혹은 딸에게 사랑한다고 전화 한 통 드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1월23일 개봉한 영화는 8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스크린 밖, 실제 예승이 아빠 또래의 우리네 아빠들은 어떨까. 일단, 극장에 갈 시간이 없다. 예승이 아빠 또래의 현실을 볼 수 있는 건 스크린이 아니라 브라운관이다. MBC의 〈일밤-아빠! 어디가?〉(〈아빠 어디가〉)가 대표적이다. 아이는 일이 바빠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아빠가 무서워 경기를 할 때도 있다. 처음으로 아빠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 날 밤, 아이들은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지켜보는 아빠 역시 어쩔 줄 모르는 동시에 서럽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면서도 식탁에 앉으면 “더 먹어. 안 먹어? 후회하지 마”라며 협박에 가까운 언사를 늘어놓는다. ‘겁박하는’ 부정과 일상 사이 간격은 멀고도 멀다.


1월6일 첫 방송을 시작해 10%대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아빠 어디가〉는 5명의 스타 아빠와 실제 자녀들이 1박2일간 외지에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시작은 일종의 위기의식이었다. 연출을 맡은 김유곤 PD 역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준수(배우 이종혁 아들)와 같은 일곱 살 아이의 아빠다. 김 PD는 “내 또래 아빠들에겐 불안감이 있다. 나이 마흔인데 고민 중 하나가 가족 안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친절한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바쁜 연예인은 직업의 특성상 밖으로 나가기도 번거로워 특히나 ‘좋은 아빠’가 되기 힘들다는 데서 착안했다. 출연자들은 공통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못 보내는 데 대한 마음의 짐이 있었다. 

그 역시 바쁜 아빠다. 지난해 MBC 노조가 장기간 파업을 하는 바람에 아이와 조금 가까워졌지만 이번 촬영 때문에 또다시 얼굴 볼 새가 없다. 김 PD는 “애들도 안다. 평소 바빠서 관심이 없다가 시간이 남아서 놀아준다고 하면 싫어한다. 평소 많이 놀아주면 귀찮을 정도로 찾지만 안 놀아주면 안 찾는다”라고 말했다. 가족이라 해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사람 사이 관계’라는 걸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다섯 아빠는 제각각 캐릭터가 다르다. 준이가 떼쓰는 걸 못 참는 옛날 스타일의 엄한 아빠 성동일(배우), 철부지 삼촌 같으면서 준수와 장난을 잘 치는 아빠 이종혁(배우), 아들에게는 엄해도 딸 지아가 해달라는 건 뭐든지 해주는 딸바보 송종국(축구 선수), 후와 친구같이 지내는 아빠 윤민수(가수), 눈물이 많은 민국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빠 김성주(방송인). 김 PD는 이 중에서 김성주가 본인 세대의 전형적인 아빠라고 말한다. “옛날처럼 가정은 아내에게 맡기고 열심히 돈 벌어오고 그러다가 소외받는다. 지금의 50대가 그렇지 않나. 옛날처럼 할 수도 없고 시간을 내기는 어렵고, 좋은 아빠가 되라는 요구는 넘쳐난다. 서점에 가도 육아혁명이니 뭐니 좋은 아빠를 강조하는 책이 많다. 육아에 있어서 아빠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실제 김성주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경험 때문에 자신의 아이에게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이내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을 좇는다.

‘아이들 세계’의 발견, 또 다른 재미

시청자는 연령대나 각자의 상황에 따라 지켜보는 마음이 다르다. 미혼인 김수정씨(30)는 “아이들 캐릭터가 재미나서 본다. 또 내가 결혼하면 아이와 아빠가 저런 모습일까 그런 생각도 든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또래 아이가 나오니 감정이입을 하고, 장년층은 아이 키우던 시기를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 특히 아이를 키우는 시청자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9세 아이를 둔 이정민씨(43)는 “아빠들이 좀 서툴러서 같은 아빠로서 공감이 간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위안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육아의 답을 주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아빠와 아이가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지, 육아에 대한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줄 뿐이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아이들 세계’의 발견이다. 아이들은 어리지만 훌륭한 대화 상대다. 텐트에서 밤을 보내던 후는 아빠 윤민수에게 “아빠는 후 싫어하지?”라고 몇 차례 질문을 던진다. 후가 아기였을 때 아빠가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던 걸 기억하고 본인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 아빠가 사과하자 후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 미안할 필요 없어. 그건 옛날 얘기고 과거는 잊어. 우리에겐 미래가 있으니까”라며 어른스럽게 대꾸한다. 아빠를 어려워하던 성동일의 아들 준이 역시 아빠와 여행을 와서 좋지만, 방송이 아닐 때도 놀러 갔으면 좋겠다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각자의 생각과 자아가 명확한 셈이다.

아빠의 모습은 다른 곳에도 있다. 설 연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MBC 〈남자가 혼자 살 때〉는 혼자 사는 남자 5명의 일상을 밀착해 보여줬다. 그중 배우 이성재와 뮤지션 김태원은 기러기 아빠다. 외국에 있는 아이들과 화상채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성재는 반려동물과 산다. 첫 끼니부터 배달 음식이다. 김태원은 번데기 통조림으로 끼니를 연명한다. ‘괜찮다’지만 많이 외로워 보이는 이들 역시 시대의 아빠를 대변한다.

〈아빠 어디가〉 제작진은 늘 방송 분량을 뽑느라 고심한다. ‘진짜 관계’인 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 섞여 있어 억지로 뭘 ‘만들기’가 어려운 구조다. 다섯 가정에 각각 머물 공간을 따로 주는 정도가 연출의 전부라고 한다. 유선주 텔레비전 칼럼니스트는 이른바 ‘가족 예능’의 인기에 대해 “옆집 사람들은 애를 어떻게 교육시킬까. 궁금해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친숙한 연예인들의 가정을 지켜보면서 공감대를 가질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육아’라면 비교적 능숙한 엄마보다는 어리숙한 아빠가 흥미롭다. 이제 세 번째 여행. 〈아빠 어디가〉의 다섯 아빠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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