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래전략연구실이라는 부서에서 일한 적이 있다. 픽션이 아닌 실화다. 미래학 연구를 하는 곳이고, 그 초기단계로 트렌드 분석을 통한 근미래 예측 같은 것을 주로 하곤 했는데, 사실 이런 걸 하는 기관은 생각보다 많다. 그 부서가 있던 연구소 이름마저도 만만치 않게 길고 복잡해서, 부모님께 “○○통신○○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에 다닌다”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해드려도 자식이 정확히 어디에 다니는지 아는 부모가 거의 없었다는, 본의 아니게 베일에 가려져버린 비운의(?) 부서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SF를 쓰다 보니 이 명칭이 좀 묘하게 읽히곤 했다. 당시 나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SF 작가로 데뷔한 상태였고, 이런저런 지면에 단편을 가끔씩 발표하는 단계였는데, 그 부서 이름을 동료 작가들에게 이야기하면 “혹시 외계인이랑 교신하는 일 같은 거 하세요?” 하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나중에 진짜로 그 일을 하는 분을 만나게 됐는데, 그 기관의 이름은 SETI다). 모른 척 이력서에 써 놓으면 마치 SF 작가가 되기 위해 일부러 들어간 것 같은 직장 이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심지어 내가 그 직장을 그만둘 무렵에는 부서 이름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미래융합전략연구실이라고. 융합이라니, 외계인을 잡아다 지구 생명체와 합치기라도 할 것 같은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야말로 SF 작가를 위한 부서 이름이 아닌가.


SF 작가 경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데뷔한 공모전의 명칭은 과학기술창작문예공모전이었다. 이름은 복잡하지만 본질은 그냥 과학소설(SF) 공모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약력을 써야 할 일이 있으면 “과학기술창작문예(SF 공모전)” 하는 식으로 설명을 덧붙이곤 한다. 그런데 이 명칭이 또 희한한 게, 수상자들 말고는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심지어 당시 심사를 맡았던 분들조차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였으니, 자식이 정확히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모르는 부모들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본의 아니게 베일에 가려져버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정부에 새 부가 생겼다. 미래창조과학부, 줄여서 미래부. 미래부가 있는 나라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기다니, SF 작가로서 감회가 새롭다. 덕분에 내 경력도 한층 신기해졌다. “과학기술창작문예로 데뷔하고 무슨 정보 어쩌고 연구소의 미래융합전략연구실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미래부가 있는 나라에서 SF 소설을 쓰고 있다!” 그야말로 신비로운 이력이 아닌가. 만약 내 책이 해외에 소개된다면 (장난이겠지만) 이것만으로도 꽤 재미있는 소개가 되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저 알 수 없는 희한한 이름들이 전부 정부기관에서 공인한 명칭이라니.

공상과학이라는 말이나 쓰지 마라

하지만 이름으로 멋 부리는 건 정부가 아닌 소설가의 일. 재미는 내가 추구할 테니 당신들은 그냥 본질에나 충실하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어차피 내 말 같은 건 아무도 안 들어줄 거고, 그저 이런 말만 덧붙일 뿐이다. ‘공상과학’이라는 말만이라도 좀 쓰지 말자고. ‘SF(science fiction)’ 어디에도 ‘공상’이라는 말은 들어있지 않고, 유래라고 찾아봐야 어느 일본 잡지 이름에서 따온 표현일 뿐인 데다, 무엇보다 SF 종사자들이 무지무지하게 싫어하는 말이어서다.

아무튼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화려한 수식보다는 담백한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더 좋은 경우가 종종 있더라는 것. 나는 그냥 과학소설 작가로만 불려도 족하고, 이 나라 행정부에는 그저 과학부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기자명 배명훈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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