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매튜 A. 크렌슨·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이제 시민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라고 이 책은 선언한다. 200년 가까이 서구 정치 무대의 주인공은 시민이었다. 평범한 시민들이 전쟁에 참여했고 세금을 납부했다. 정부는 평범한 시민의 지지와 협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민은 정치인의 수사에만 존재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일례로 미국의 ‘연방정부 성과평가 위원회’는 시민 대신 고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고객은 정부의 서비스를 받는 ‘대상’에 불과하다. 시민의 도움 없이도 권력을 유지하게 하는 통치 기술(소송·기소·폭로 등)이 시민의 집합을 해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등장한 게 대중 민주주의를 대신한 개인 민주주의다. 저자들은 정보공개법, 공청회 의무화, 시민대표 할당제 등이 오히려 시민의 구실을 위축시켰다고 말한다. 대중이 아니라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장치만 남은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 있는 시민’만이 정치 공간을 독점할 때 ‘동원되지 않으면 참여조차 불가능한’ 시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된다. 미국의 이야기지만 대한민국의 이야기다. 특히 지난 대선을 겪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속의 순간들 제프 다이어 지음, 한유주 옮김, 사흘 펴냄 제목은 ‘결정적 순간’의 변용이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하는 ‘결정적 순간’ 대신 저자는 ‘지속의 순간’을 말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는 순간의 포착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지속된다는 의미다. 작가 제프 다이어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이고 에세이스트이면서 출판 편집자다. 문학에서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주제를 아우르는 글쓰기를 한다. 이번 책에서 그는 1800년대 초기부터 현재까지 활동해온 사진작가 42명의 이야기와 작품을 비평한다. 사진에 관한 그만의 독특한 독해가 담겨 있다. 사진의 열거 순서와 방식은 무작위다. 한 작품에 ‘꽂혀’ 오랫동안 설명하기도 하고 아우구스트 잔더(사진작가)의 작품에서 나오는 눈먼 걸인이 브루스 데이비슨의 사진에 담겼다가 워커 에반스, 윌리엄 이글스턴의 시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주 소설가와 사상가의 글을 인용해 이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독자가 보는 건 한 장의 사진이지만 글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 속 현장 근거리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진가의 모습까지 눈에 그려진다.

풍성한 먹거리 비정한 식탁 에릭 밀스톤·팀 랭 지음, 박준식 옮김, 낮은산 펴냄
먹거리와 관련된 전 세계 이슈 40가지를 지도와 그래픽으로 정리했다. ‘10㎏의 사료로 1㎏의 쇠고기가 생산된다’ ‘모든 미국인이 육류를 5%만 줄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200만t 줄어든다’같이 짧은 글 뒤에 오는 숫자·그림 위주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전 세계 식량 위기의 현주소를 생중계한다.

크랙 캐피털리즘 존 홀러웨이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펴냄 반자본주의 운동에 이론적 영감을 제공해온 존 홀러웨이가 말하는 균열(크랙)은 광장 점거같이 거창한 게 아니다. ‘텃밭에서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장노동자’같이 자본주의에 속박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것. 그래서 ‘크게 한 방’이 아니라 ‘균열’이다.

무국적 요리 루시드 폴 지음, 나무나무 펴냄 음악인·화학자에 이력을 하나 더 보탠다. 소설가. 루시드 폴이 단편 여덟 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을 냈다. 놀랄 일은 아니다. 평소 말과 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그. ‘기존 소설 문법에서 읽을 수 없는 독특한 세계관과 스타일로 무장했다’는 평이 과장은 아니다.

경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비채 펴냄 〈고백〉 〈야행관람차〉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자극적인 소재를 담담한 독백체로 서술하며 고백·속죄·용서라는 테마를 다뤄온 그가 이번엔 ‘모든 과거는 반드시 밝혀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보육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여인의 드라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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