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직장생활 13년째, 결혼한 지 11년째, 아이 엄마로는 10년째이다. 다섯 살 난 아이가 한 명 더 있고, 맞벌이다. 아침 7시에 첫째를 깨우고 등교 준비를 시키면서 나도 분 단위로 시계를 보며 이를 닦고 옷을 입는 등 출근 준비를 한다. 회사 업무 중 온라인 계좌 이체로 각종 공과금을 내고, 다른 학부모와 문자를 주고받는 등 회사 밖 일도 틈틈이 본다. 집에는 아무리 늦어도 9시까지는 도착해야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얘기하고 둘째 아이에게 책도 읽어줄 수 있다. 아이들을 재우고 다음 날 발표할 기획안을 보강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깐 눈을 붙인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싶지만 아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대학 친구가 연락을 해 저녁에 보자고 하지만, 당장 대답할 수 없다. 친구를 만나는 여가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나의 귀가 시간이 늦어져도 괜찮은지 친정어머니나 남편에게 미리 알려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늘 바쁘다는 생각이 들고,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여성학자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서해문집, 2013년 1월 출간)이라는 책에 이런 내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어 놀라웠다. 일을 잘하고 싶은 욕망과 가정을 잘 꾸리고 싶은 욕망 모두를 포기하지 못하는 맞벌이 여성들은 결과적으로 동시성, 밀도 강화, 최적화를 목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며, ‘가족’을 ‘기획’해 나간다.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한 사회구성원 중 하나인 맞벌이 여성이 처한 상황을 개별성과 보편성 모두를 확보하며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자체로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와 같은 질문을 머쓱하게 할 만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기자명 김정희 (예스24 콘텐츠미디어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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