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사랑의 도피는 마지막 선택이다.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하거나, 집단에서 이탈된 이들이 두 사람만의 낙원을 찾아 떠나는 모험. 그러나 사랑의 도피는 대개 비극으로 끝난다. 그들이 다다른 곳이 ‘블루 라군’ 같은 문명과 동떨어진 세계라면 모를까,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다시 어딘가에 속하고, 사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일상을 겪으면서 바래가는 사랑을 보면서,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원한 낙원이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감옥인 것을. 문명에서도, 일상에서도 유폐된 그들만의 금지된 낙원.

사랑의 도피를 그린 영화라면 〈로미오와 줄리엣〉 〈졸업〉 〈트루 로맨스〉 등이 떠오른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음을 선택했고,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벤자민과 엘레인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웃음을 거두고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트루 로맨스〉의 클레런스와 알라바마는 사랑의 도피에 성공하지만, 그건 판타지다. 시나리오를 쓴 타란티노는 토니 스콧 감독이 결말을 바꾼 〈트루 로맨스〉에 만족했지만, 원작 시나리오에서 그들은 비참하게 죽어간다. 행복한 사랑의 도피는, 언젠가 깨어나야 하는 백일몽 같은 것이다. 현실에서 도망가야 하는 그들에게 안정된 미래와 행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울한 말이지만, 그러니까 판타지로 가보자. 〈로얄 테넌바움〉 〈다즐링 주식회사〉의 웨스 앤더슨 감독은 늘 ‘이상한’ 사람들, 엉뚱하고 도발적인 개성 때문에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문라이즈 킹덤〉에도 이상한 사람이 잔뜩 나오는데, 이번 영화의 중심은 바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는 남녀다. 어른이 아니라 아이.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의 샘과 수지가 바로 주인공이다. 양부모에게도 버림받은 샘은 카키 스카우트의 일원이지만 늘 괴롭힘을 당하고 혼자 떠돌아다닌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수지는, 가족이건 친구건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다. 폭력을 억제하지 못하는 수지를 보면, 부모는 그녀가 자신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샘과 수지는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 사랑에 빠졌고, 1년간 펜팔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했고, 마침내 함께 도망치기로 약속한다.

몽상가의 그림책을 보는 듯한…

샘과 수지는 철부지가 아니다. 엉뚱한 아이들이지만, 그들은 강하다. 누군가의 방해만 없었다면 그들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카키 스카우트의 대장 랜디, 뉴 펜잔스 섬의 보안관 샤프, 수지의 부모인 월트와 로라 비숍 그리고 샘을 데려가려는 사회복지사까지 샘과 수지를 뒤쫓는다. 가족의 일상, 잔잔하게 흘러가는 여정을 보여줬던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문라이즈 킹덤〉은 스펙터클하다. 블록버스터 액션과는 전혀 다르지만, 〈문라이즈 킹덤〉에는 격렬한 액션과 추격전 그리고 거대한 재난의 현장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전형적인 이야기가 엉뚱한 아이들의 모험으로 변주되었다고나 할까.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숙한 상황과 장면들이, 마치 몽상가의 그림책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되바라진 아이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로 창조해낸 영화.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평화롭다. 〈문라이즈 킹덤〉은 1965년을 배경으로, 그 시대와는 아무 상관없이 사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따스한 그림엽서 같은 풍경과 뭔가 이상하지만 귀여운 캐릭터들을 멋대로 연주하는 영화. 영화 앞뒤로 깔리는 음악처럼, 서로 다른, 너무나도 다른 악기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거대한 여운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기자명 김봉석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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