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유럽 평론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책이 한 권 있다. 브라질 출신의 무명작가였던 파울로 코엘료가 쓴 소설 〈연금술사〉이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관심을 가진 유명 평론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혹평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조용히 유럽의 서점가를 점령해갔다. 결국 전 세계 120개국에서 번역돼 2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의미 부여를 하는 데 도가 튼 평론가들도 소년의 영적 탐구 여행을 그린 이 평범한 소설이 어째서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지난 뒤에야 이것이 단순한 문학 현상이 아니라 사회 변화의 조짐이란 걸 알게 됐다.

해마다 신도 수가 줄고 행사장이 썰렁한 데 익숙했던 로마 교황청 관계자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럽의 평론가 못지않게 어리둥절해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최하는 축제와 행사에 갑자기 수백만 젊은이가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불교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유럽의 불교 사원과 스님들 강연장은 파란 눈의 젊은이로 북새통을 이룬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유럽의 20~30대는 가장 본받을 만한 인물 1위로 달라이라마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힐링이 대세를 이룬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승려나 신부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예전처럼 혼탁한 사회를 향해 일갈하는 게 아니라 종교와 삶의 본질을 말하는 책이 많이 팔린다. 출판사들은 새 얼굴의 스님이나 신부님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지난 30세기를 통틀어 세계가 이처럼 세속화된 예가 없었다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갑자기 영성에 기대려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기성 종교에만 힘이 실리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연예인, 스포츠 스타(마라도나교 신도는 4만명을 넘어섰다), 심지어 스마트폰(죽은 스티브 잡스나 애플 신도를 자처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까지도 종교의 대상으로 삼는다. 신을 물질과 과학으로 대체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굴던 사람들이 갑자기 부처님의 감화를 받아 불경을 가지러 가는 스님의 ‘빵셔틀’이 된 일진 손오공처럼 변한 셈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소설에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청빈과 자비와 자선을 엄격하게 실천하는 비엥브뉴 주교에게 ‘시대를 앞서가는’ 상원의원은 다음과 같이 비아냥댄다.

“하하 천국 같은 건 아무 데도 없어요. 신이란 엄청난 조작이죠. 물론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않죠. 친한 친구끼리 술좌석에서만 해요. 괴로워할 것인가, 즐길 것인가. 어차피 허무로 끝날 건데 선택은 간단하죠. 하류계급, 거지나 칼 가는 사람이나 부랑자에게는 무엇인가 있어야겠죠. 하느님은 빈털터리에게만 필요한 겁니다.” 

빅토르 위고는 탐욕과 적개심이 판치는 격변기에 장발장처럼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변혁을 이끈다는 잘난 자들이 아니라 우리 안의 신성을 두려워할 줄 아는 비엥브뉴 주교 같은 이들이라는 걸 말하려고 이 책을 썼음에 틀림없다. 1%만 빼고는 모두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 돼버린 시대에 이 책과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랜 동안 상원의원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4년여 동안 요절복통할 종교 체험

그런 점에서 뭐든지 직접 몸으로 부딪쳐봐야 직성이 풀리는 ‘몰입 저널리즘(비아냥대는 사람들은 스턴트 저널리즘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신봉자인 독일 기자 위르겐 슈미더가 쓴 〈구원 확률 높이기 프로젝트〉(펜타그램, 2013)는 적시타이다. 그는 어려서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주입받고 자랐지만 철들고 나서는 곧 배교하고 〈레미제라블〉의 상원의원처럼 살았다. 그렇더라도 과학자이자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처럼 모든 종교는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짓말을 없애자는 말이나 같다.

게다가 그는 혹시라도 지옥에 갈까봐 여간 겁나는 게 아니다. 그러니 도킨스보다는 파스칼을 섬기는 게 낫다. 파스칼은 어차피 신이 있는지 없는지 증명할 길이 없다면 신이 있다는 쪽에 내기를 거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신이 있다면 잃을 게 있지만 신이 없다면 손해볼 게 없는 까닭이다. 그는 기왕이면 구원받을 확률을 좀 더 높이기 위해 파스칼의 내기를 좀 더 확대하기로 했다. 되도록 모든 종교를 믿고 구원 확률이 높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범신앙론자가 돼보기로 한 것이다. 룰렛 번호판에 빠짐없이 베팅한 셈이다. 그는 온갖 종교의 성물을 사와 집을 치장하고 무려 4년여 동안 요절복통할 종교 체험을 한 뒤에 이 책을 썼다.

그는 가까운 친지들에게 구원받는 데 방해가 될 만한 자신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지적해달라고 정중히 이메일을 보냈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친구들의 답을 들으면서 절교를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식당 문을 박차고 나오거나 이메일에 “너나 잘하셔”라고 써서 보낸 적도 있다. 그의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정의감이 지나쳐서 용서하고 용서받는 일을 잘 못한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한다. 독선적이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바보 취급한다. 고집스럽고 거만하다. 화를 잘 내고 사소한 일에 흥분하며 때때로 공격적이다. 이기주의자다. 자기를 위해주고 걱정하는 사람하고만 가까이 지낸다.

저자는 도가나 불교가 가르치는 명상과 상황극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들여다보며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살면서 맺은 여러 관계들을 명확하게 보았다. 그의 인생에서 부모가 어떤 역할을 했고 형제자매와 소꿉친구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깨달았다.

저자는 모든 종교가 강조하는, 용서하고 용서받는 일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또 이메일을 보냈다. ‘모두 용서할 테니 그동안 나 모르게 내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고백해달라’고 부탁했다. 한 친구는 예전 그의 여자 친구와 여러 차례 자려고 시도했으나 애석하게도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깔끔하게 용서했다. 또 다른 친구는 “옛날에 네가 너무 얄미워서 아는 형에게 손 좀 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라고 털어놨다. 몽둥이를 든 괴한에게 정신없이 쫓겼던 기억이 나 화가 났지만 그것도 용서했다. 그는 남을 용서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믿을 만한 친구를 찾아 그동안 그가 남에게 저질렀던 잘못을 장장 7시간에 걸쳐 고백했다. 그리고 정말 사과해야 할 7명을 골라 그들에게 잘못을 빌었다. 많은 사람이 정직하게 실수를 인정한 걸 축하하고 용서해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는 이 힘든 일을 통해 자신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고 자신과 더 잘 지내는 사람이 됐다.

그는 몇 주간 휴가를 내 온갖 종교 계율을 지켜보았다. 잔고를 다 털어 적선도 해보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종교도 인간이 만든 것인 만큼 인간처럼 편협하고 오만한 구석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남의 눈의 가시는 보면서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하는 과오를 너무나 쉽게 범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대개의 종교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경전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미덕을 골라내는 눈이 필요했다. 룰렛에 거는 돈에 차등을 둬야 했다. 그렇게만 하면 신과 종교를 믿는 일이 결코 고루하지 않고 멋지다는 걸 깨우쳤다. 그는 어떤 종교에 얼마를 걸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중국에서 만난 친구 왕리처럼 ‘유교 모자에 도교 외투를 입고 불교 샌들을 신고 산책하는 식으로 살게 됐다’고 말한다.

신을 믿건 안 믿건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즐거우리라고 생각한다. 기발한 발상과 재치가 곳곳에서 번득인다. 신은 정말 유쾌하시다는 걸 알겠다.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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