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이전에 활동했던 시민단체에서 ‘성북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로 옮기면서 독립 후 두 번째 이사를 감행했다. 그리고 나도 주민으로 어우러져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새로 일하게 된 곳의 취지에 맞게, 부유하기보다 뿌리내리고 살아보겠다는 뜻이었다.
‘독거청년’이 직장을 따라 이사 오겠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은 당장 방부터 알아봐주기 시작했다. 서울 길음동의 한 주민은 적극적으로 ‘적당한 방’을 권유하고 나섰다. 가보니 혼자 살기에는 아주 널찍한 방이 나를 맞았다. 화장실도 크고 부엌도 분리돼 있었다. 창문 앞에 담장이 있어 좀 어둡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통풍이 잘 돼 문제는 없어 보였다. 서울서는 쉽사리 구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이런 방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0만원! 무엇보다 방을 소개해준 주민과의 인연과 믿음이 있었기에, 더 볼 것도 없이 계약했다.
길음동 소리마을 주민협의회장님이 앞장서 월세 계약서를 작성해주셨다. 부동산 소개비가 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마침 이사 올 집 바로 옆에는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주민이 계셨다. 그분도 소개받아 저렴하고 편하게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 후로 택배가 올 때마다 아저씨는 “언제든 편하게 맡기라”며 친절히 받아줬다. 지난번 거주했던 동네에서는 받아본 적이 없는 작은 호의들이 새로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가능한 행운
이런저런 물품들도 입수되기 시작했다. 주변 이웃들을 만나서 “우리 집에 가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길음뉴타운 3단지 임차인대표 회장님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적당한 중고 냉장고가 있다며 건넸다. 지역의 한 선생님은 “침대 남는 게 있는데 주민씨 주면 딱 좋겠네”라며 호의를 베풀었다. 평생 바닥에서만 지내 왔는데, 처음으로 침대생활을 해보게 됐다. 조만간 날 풀리면 냉큼 업어올 계획이다.
무엇보다 독거청년에게 중요한 건 밥과 반찬이다. 독립 후 식생활을 돌아보니, 사먹거나 인스턴트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정을 알았는지, 한 고마운 주민은 틈나는 대로 반찬을 챙겨다 줬다. 멸치볶음·콩나물무침·달걀말이·찌개류까지…. 주인집 할아버지도 각종 전·김치 등을 가져와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동네 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산 것보다 훨씬 더 푸짐하게 깍두기와 갓김치를 손에 쥐여줬다. 이런 소중한 배려로 나는 첨가물에 찌든 식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았다. 처음 독립할 땐, 밥솥·서랍·책장 등 생필품을 모두 개인의 ‘소비’로 해결하다보니 적잖은 돈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채워졌다. 이런 행운은 나만 누릴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재개발 갈등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서울 성북구에서 ‘마을 새싹’이 돋아나고 있듯, ‘뉴타운식 막개발’보다 마을 공동체 회복이 먼저라면 모두에게 충분히 가능한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