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던 1990년대, ‘파라사이트족’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파라사이트족이란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젊은이’를 말한다. 어떤 주간지에서는 파라사이트족을 가리켜 노골적으로 ‘기생충’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파라사이트족의 출현은 기존 일본 사회 분위기 전반에 반하는 현상이었다.

경제적으로 황금기였던 1980년대 말부터 버블경제로 서서히 추락한 일본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잔업을 없앴고, 그 때문에 샐러리맨 월급은 평균 10만 엔이 낮아졌다. 그뿐 아니라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던 주택보조비 따위 각종 명목의 수당이 모조리 사라졌다.

따라서 당시 사회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3년차 샐러리맨은 월급 15만~18만 엔에서 방세를 내면 용돈은커녕 하루 세 끼 식사조차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을 만큼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부모와 같은 도시에 사는 미혼자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 집에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에 파라사이트족이 존재했다면,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일명 ‘네트족’이 탄생했다. 네트족이란 인터넷 카페나 24시간 운영하는 만화 카페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파라사이트족은 정규직인 화이트칼라 샐러리맨이 중심이었던 데 비해, 네트족은 비정규직 블루칼라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연령층도 다양하다. 1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대도시 전반에 퍼져 있다. 네트족이 쓰는 비용은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오전 10시까지 1500~2500엔. 큰 짐은 동전 사물함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낸다.

다양한 연령대의 비정규직 블루칼라

일부 한국 언론에서는 맥도날드 같은 햄버거 가게에서도 밤을 지내는 사람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이들은 공부를 하러 근처 맥도날드에 온 대학 자취생이거나 밤새워 노는 가출 청소년이 대부분이라, 주거 개념으로 밤마다 상주하는 네트족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20대 네트족은 대부분 지방 출신으로 프리터(프리+아르바이트) 생활을 한다. 그래서 늘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취업 준비생처럼 취업에 인생을 걸지는 않는다. 일본 젊은이들의 특징은 무슨 일이든지 무리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방세를 내고 기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것뿐이다.

30~50대 네트족은 그야말로 벼랑 끝 위기에 선 이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대개 한번쯤 결혼한 경력이 있다는 것. 일부는 자식도 있다. 하지만 가정은 깨졌고 직장도 없다. 남은 것은 몸뚱이 하나, 정말 갈 곳이 없다. 게다가 장기간의 극심한 불경기로 파트타임이나 일용직 노동일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파트타임은 20대나 여성이 주로 차지했고, 건설 현장이나 간단한 일용 노동일은 갈수록 그 기회가 줄어든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아니다. 아예 관심조차 없다.

30~50대 네트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홈리스(노숙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네트족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2000엔가량만 지불하면 지붕과 벽이 있는 공간에서 편히 쉴 수가 있다. 하지만 홈리스는 그야말로 길바닥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네트족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비정규직이나 프리터가 400만명이고, 이 중 일부가 네트족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 또한 이들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 실태조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통계자료는 추정치일 뿐 인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기자명 도쿄·유재순 (JP뉴스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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