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파리는 젊은이에게 그렇게 낭만적인 도시만은 아니다. 살 곳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파리의 생마르탱 지역에 월세 675유로(약 94만원)짜리 스튜디오 광고가 나자 후보자가 무려 40명이나 몰려들었다. 17㎡짜리 작은 스튜디오 임대 경쟁률이 40대1로 마치 입시 경쟁률을 방불케 했다. 부동산 중개인에 따르면 40명 가운데 4명만이 임차인 자격에 미달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임차인 자격을 충족해야 방을 구할 수 있다. 집주인들이 세입자의 재정 상태를 임대 자격의 주요 요건으로 두는 것이다. 집주인들은 월세가 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세입자 월급의 2~3배 이상을 미리 받는다. 하지만 최저생계비(2012년 최저생계비는 시간당 세금 포함 9.22유로)를 벌기에도 빠듯한 젊은 세입자가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보증인 제도이다. 세입자 80% 이상이 자신이 월세를 내지 못할 경우 임차료를 대신 내줄 보증인을 세운다. 집주인 처지에서 보증인은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수입이 많지도 않고 보증인도 없는 젊은이들은 서류 심사에서부터 번번이 거절당한다.
집 빌릴 때도 서류 심사
젊은이들의 집 구하기 고충은 파리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악한 수입, 불안정한 직장, 보증인 문제 등으로 젊은이들은 임차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청년 세대들은 임차시장에서 가장 큰 고객인데도 역설적으로 시장은 이들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프랑스 폴리로지 그룹이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 세대(18~29세)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방 구하기라고 한다. 비싼 물가, 낮은 임금에 직면한 청년 세대에게 실업문제보다 더 큰 고민이 방 구하기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부담하는 평균 임차료는 월 562유로(약 78만원). 이 가운데 가족의 도움이나 사회보조금이 43%를 차지한다.
프랑스 정부는 곤란을 겪는 청년에게 월세를 부분적으로 지원한다. 학생, 저임금 직장인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주거보조금(APL)은 임차료에 따라 결정되는데 매달 약 200유로 내외다(파리 기준). 하지만 이 지원금은 임차료의 일부만 해결할 뿐이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임차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사회임대주택(Logement Social)을 건설해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임대주택의 공급은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세실 뒤플로 주택장관은 임대를 하지 않은 빈 아파트에 대해 세금인상 등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2025년까지 임대주택 규모를 25%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프랑스 젊은이들은 비싼 임차료를 절약할 수 있는 대안적인 주거 방식을 모색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인 ‘아파트 셰어’는 오래전부터 일반화된 임차료 절약 방법이다. 또 학생들의 경우 18~20㎡ 크기의 저렴한 기숙사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월세는 350~400유로다. 하지만 파리의 경우 기숙사 역시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해 입주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등장한 주거 방식이 바로 ‘세대 간 주거방식’(Logement Intergenerationnel)이다.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 거주하는 대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쓰레기 버리기, 행정처리, 장 보기, 요리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무료로 거주하는 혜택을 누린다.
21세 대학생 빅토리아도 88세인 잔의 집에서 생활한다. 빅토리아가 잔의 집에 무료로 거주하는 조건은 한 달에 두 번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 8시 전에 귀가하는 것이다. 학생인 빅토리아 처지에서는 학교 기숙사나 불편한 다락방(‘하녀방’이라 불림)에서 생활하기보다 훨씬 좋은 안락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임차료를 절약할 수 있고,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노년을 홀로 보내는 잔 처지에서는 갑작스럽게 닥칠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할 수 있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세대 간 주거는 이를 중개하는 협회를 통해 자격 조건, 생활을 위한 합의 사항에 대한 동의를 거쳐 이루어진다. 현재 프랑스에는 10여 개 협회가 세대 간 주거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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