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홍(변호사, 법무법인 지평)또 한번 이중대표소송 개정이 좌절되었다.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에 방해가 된다는 법무부 장관의 결단에 의해서다. 국회가 나서서 재벌 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를 막는 이중대표소송을 부활시키기를 기대해본다.
신정아씨 사건이 한창 시끄럽던 지난 9월11일 국무회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 작업은 상법개정위원회가 2년간 준비해온 것으로 1962년 상법 제정 이후 가장 근본적인 개정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개혁안으로 논의되던 ‘이중대표소송’에 관한 규정은 막판에 삭제되었다.

‘이중대표소송’이란 지배회사의 주주가 종속회사를 대신해 종속회사의 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예컨대, 삼성에버랜드는 1996년 말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에버랜드 주식의 64%에 해당하는 전환사채를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에게 헐값에 배정했다. 이로써 삼성에버랜드는 막대한 손실을 보았지만, 그 주식을 나눠 가지고 있던 삼성 계열사들은 아무도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에버랜드 이사들에게 손해배상을 구하지 않았다. 그룹 총수를 상대로 감히 소송을 제기할 계열사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삼성 계열사들(지배회사)의 소수 주주들로 하여금 삼성에버랜드(종속회사)를 대신해서 그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바로 이중대표소송이다. 총수 일가가 지배회사와 종속회사를 모두 지배하는 우리 기업 경영 현실상 종속회사를 통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다.

특히 대기업들이 잇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재벌 계열사 경영진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지주회사의 주주에 의한 이중대표소송이 절실하다. 지주회사 전환 이후 재벌 계열사들에는 더 이상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소수 주주가 없기 때문이다.

이중대표소송은 지금의 상법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도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2004년 이중대표소송을 허용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함으로써 그 길은 막혀버렸다. 2005년 7월 법무부에 설치된 상법개정위원회가 이중대표소송제를 상법에 명문화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법무부 장관이 바뀌면서 개정안에서 삭제하고 말았다.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김성호 장관의 결단이었다고 한다.

ⓒ뉴시스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위)은 장관 재직 시절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을 조성한다며, 이중대표 소송제를 시작했다.
이중대표소송을 금지하는 것이 정말로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을 조성하는 길인지는 의문이다.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이란 기업가가 마음 놓고 적법한 경영을 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말하는 것이지 부당 내부거래, 분식회계, 업무상 배임ㆍ횡령 등 주주대표소송의 대상이 되는 불법행위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경제의 ‘선봉장’인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이중대표소송 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반시장적ㆍ반기업적 불법 경영을 방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이다.

삼성에버랜드의 전 대표이사들은 지난 5월29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전환사채의 편법 배정은 회사에 대한 명백한 배임 행위라는 이유에서였다. 형사 판결로나마 경영권 편법 상속의 문제점이 선언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경제와 경영의 문제를 매번 이렇게 형법으로 재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당장 편법 상속의 실질적 주역인 총수 일가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편법 상속을 통해 총수 일가가 받은 이익도 회수되지 않았다. 이중대표소송이 허용되었더라면, 당장 총수 일가 및 이를 방조한 이사진 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자유 시장경제에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경제주체들이 서로 경쟁하며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기업의 건전성이 향상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효율적이다. 이중대표소송과 같은 민사적 통제 절차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법무부가 실패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국회가 나서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 이중대표소송제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본다.

기자명 김지홍(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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