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헤어조크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함께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황금을 찾아 아마존으로 들어간 스페인 군대의 광기와 몰락을 그린 〈아귀레, 신의 분노〉, 아마존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며 거대한 배를 밀림 속으로 끌고 들어간 남자의 이야기 〈피츠카랄도〉. 그 시절부터 헤어조크는 인간의 광기와 자연의 영원성에 매료된 낭만주의적인 감독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헤어조크는 더욱더 ‘자연’과 ‘시간’에 사로잡혔다. 곰 연구에 모든 열정과 인생을 바치고 결국 곰에 의해 죽은 실제 인물의 일생을 그린 〈그리즐리 맨〉 같은 영화를 만들거나, 아벨 페라라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악질 경찰〉에서 종종 도마뱀의 시선으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처럼.

베르너 헤어조크가 2010년에 만든 〈잊혀진 꿈의 동굴〉은 1994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을 찍은 3D 다큐멘터리다. 동굴 안에는 3만2000년 전부터 수천 년간 그려진 동굴곰과 바이슨(아메리카들소), 말 등 고대 동물의 암각화가 있다. 연구진에게도 하루 4시간만 출입이 허용되는 쇼베 동굴을 〈잊혀진 꿈의 동굴〉은 3D로 고스란히 담아낸다. 울퉁불퉁 물결치는 동굴의 벽을 이용해 양감과 움직임을 그려낸 벽화는 너무 섬세하고 정교하다. 

프랑스 쇼베 동굴을 찍은 다큐멘터리

서커스 단원에서 고고학자로 변신한 연구원이 말한다. 첨단 과학을 통해 우리는 동굴의 모습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밝혀낼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은 단지 그것이 아니다. 동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찾아가는 것. 바닥에는 늑대와 소년의 발자국이 바로 옆에 찍혀 있다. 겁에 질린 소년을 늑대가 쫓아간 것일까? 소년과 늑대는 친구였을까? 아니면 두 발자국 사이에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우리는 단지 유추할 뿐이지만, 상상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수만 년 전 사람들은 두 가지 특성이 있었다고 한다. 유동성과 투과성. 인간이 동물로 변하고, 나무가 말을 하고, 그 모든 것이 자유롭게 변화하고 결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유동성이다. 투과성은 어떤 장벽도 없음을 말한다. 과거와 미래, 실재와 초자연의 세계가 뒤섞이는 것. 종교적인 의식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쇼베 동굴에서는 영혼을 불러내고, 대화를 하고, 혹은 동물의 영과 결합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현대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 혹은 ‘잃어버린 세계’에 살고 있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유적을 만나면 몇 시간이고 그저 바라보라고 말했다. 그러면 수백, 수천의 시간이 자신과 함께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벗어나 이 세계, 우주 전체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인간의 좁은 시야, 시간을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영혼’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1970년대까지 석기 시대를 살았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은 지금도 선조들이 그린 암각화가 지워지면 고쳐 그린다. 왜 그리느냐고 물어보면, 영혼이 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그들의 손도 영혼의 일부라면서.

동굴에 들어간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어떤 감정적 고양,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다고. 그 기분을 〈잊혀진 꿈의 동굴〉을 통해 만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3D로 찍힌 동굴 벽화를 보고 있으면, 그 후 수만 년 동안 만들어진 종유석들을 보고 있으면 그 편린은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정말 작은 존재이고, 단지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수만 년의 시간을 건너, 3D로 재현된 영화를 통해 고대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기자명 김봉석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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