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뉴스에서 접하는 학교에 관한 참담한 소식들, 몇 가지 선정적인 수사로 어림짐작하는 학교와 학생에 대한 보도를 접하다 보면 결국 요즘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집단이고 입시에 휘둘리는 학교는 돌이킬 수 없는 아수라장이라는 개탄이 남는다. 교육정책에 관한 뉴스를 봐도 그저 막연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2002년, 4탄이 마지막이었던 드라마 〈학교〉 시리즈의 부활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교실을 무대로 꿈과 희망, 갈등과 우정, 어설픈 화해 따위가 오가는 학원물의 정서를 먼저 떠올리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학교 시리즈가 그렇게 말랑하기만 한 작품이 아니었는데도!).

5탄 대신 2013이라는 숫자를 달고 나온 〈학교 2013〉이 특별한 건 이 드라마가 단지 학교 폭력, 교권 실추, 입시 만능주의 따위 해묵은 화두를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다.

승리고등학교 신입생 유치를 위한 입시 설명회와 교장(박해미)이 서울시내 학교성적 순위를 언급하고 학교 등수를 올릴 것을 발표하는 대목에서 ‘고교 선택제’가 보이고,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계약 해지를 당할 경우 문제 교사로 낙인찍혀 타 학교도 가기 힘들다는 것을 빌미로 교장이 정인재 선생(장나라)을 압박하는 장면에서는 ‘기간제 교사’가 학교와 맺는 계약의 형태가 드러난다. 시험문제 출제나 담임 교체 등 교사나 교장의 고유 권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학부모 운영위원’의 모습. ‘수행평가’ 채점 기준에 의문을 품는 학생은 교사에게 묻는다. “그럼 모범답안은 왜 있는 거죠?” 교육정책이 현장에서 어떤 모양새로 움직이고 어떤 문제가 불거지는지 조망하는 이 드라마의 시선은 학교 행정 절차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학교 행정 절차도 세심하게 보여줘

학생을 징계하는 벽보 하나가 나붙기 위해서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가 소집되어 정족수를 채워야 하며, 경계성 학습장애를 가진 특수학생이 ‘권고 전학’의 처분을 받았던 에피소드에서는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전학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린다. 폭로나 고발 같은 선정적인 뉘앙스로 학교 문제에 접근하는 대신 교사·교장·학부모 등 이해관계가 다른 여럿의 의견을 충돌시키고 학교 행정 절차를 세심하게 보여주는 이 드라마가 그리는 학교의 윤곽은 체육 교사(윤주상)의 목소리에서 가늠할 수 있다. “절대라는 기준으로 움직이면 그건 사회지 학교가 아닙니다. 조금씩 물러나기도 다가서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룰을 만드는 것, 이게 학교가 하는 일 아닌가 싶은데요.”

어떤 면에서는 낭만과 합리를 절충한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학교가 얼마나 책임의 범주와 한계에 민감한 곳인지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의 소지나 잡음을 없애는 쪽으로 교칙을 적용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뿐만 아니라 교단에서 직접 학생을 마주하는 교사에게도 그렇다. 2학년 2반의 공동 담임이 된 정인재와 강세찬(최다니엘)은 학생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는 따뜻한 열혈교사와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려는 냉정한 입시 위주 교사의 대비처럼 보이나 두 사람의 차이를 이상과 현실, 혹은 자질과 능력으로만 설명하긴 부족하다. 한 학생의 퇴학을 거론하는 자리에서 정인재는 “이번만 봐주면 달라질 수 있는데, 정말 중요한 마지막 기회를 제가 스스로 놓는 것 같아서요”라며 선처를 호소한다. 그리고 시험기간에 잠을 쫓느라고 카페인 음료와 비타민제를 혼합한 ‘붕붕주스’를 마시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제자에 관한 기억이 있는 강세찬은 “엄마조차도 때로는 아이를 놓친다”라고 말한다. 포기하는 것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생각하는 정인재나 교사로서의 한계를 절감했던 강세찬 두 사람의 교육관이나 수업 방식의 차이는 모두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책임의 범주와 한계에 대한 갈등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책임의 범주를 두고) ‘겁이 난다’고, (한계 밖의 학생들이) ‘무섭다’고 말했던 두 선생님의 목소리로 〈학교 2013〉은 그다지 이야기된 적 없는 교사의 고통이나 상처를 들춘다.

아이들 역시 학교가 책임을 두고 운신하는 것에 무척 민감하다. 문학 교과 연구수업을 앞둔 정인재가 아이들이 졸지 않는 모둠 토론 수업을, 강세찬이 어차피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데 이중 부담을 주지 않고 성적을 올리겠다는 수능 맞춤형 수업을 준비했을 때 교장은 교실을 갈라놓고 아이들에게 원하는 수업을 선택하게 한다. 똑 부러지게 말하지는 못해도 학교 측이 학생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학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미룬다는 것을 감지한 아이들은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하고 교실을 비웠다. 수업 거부라는 형태가 낯설지는 않지만 〈학교 2013〉이 현재의 교육정책과 학교 내부의 사정을 세밀하게 쫓는 덕분에 그런 움직임들에 반응하는 교사와 학생의 마음 안쪽이 진동하는 것을 엿본다. 비관을 보태는 것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도 나중이다. 지금의 학교에 관해 아는 게 뭐가 있었나 싶을 정도니까.

기자명 유선주 (TV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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