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쯤이었다. 당시 김형보 웅진지식하우스 대표(41)는 고민스러웠다. 대형 출판사의 인문·교양서 섹션을 총괄하는 자리. 1999년에 웅진출판에 입사해 단행본 편집을 시작했으니, 편집자 12년째였다. 지인들은 책임자 자리에 오른 것을 축하했지만, 김씨는 매니저 역할을 하기보다는 책을 직접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출판계에서는 40대 중반이 되면 대개 ‘편집자 현업’을 떠난다. 그 즈음 한 출판사가 여러 브랜드를 관리하는 출판계의 ‘임프린트’ 흐름이 한풀 꺾이면서, 기존 임프린트에 속했던 편집자 가운데 독립해 창업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마흔을 앞두고 고민이 함께 왔다. 결론을 냈다. “40대 때 내가 책을 만들면서 늙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현장감이 떨어지기 전에 움직이자.” 사표를 내고 출판사 창업을 준비했다. 2010년 10월에 사무실을 냈다. 첫 책 〈쿨하게 사과하라〉가 나온 게 2011년 3월7일. 출판사 어크로스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함께할 이를 찾았다. ‘1인 출판’이 가능하지만, 혼자서 1년에 5~6종을 내는 방식으로는 자족적 출판에 머물 것 같았다. 영업 마케팅을 담당할 이상호 부사장과 편집자 이경란씨, 김류미씨가 합류했다. 1년에 10종을 내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첫해에 8종을 냈고, 2012년에는 9종을 냈다. 〈과학 콘서트〉 〈쿨하게 사과하라〉 〈위클리 비즈〉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등이 ‘1만 부 선’을 넘어섰다. 신생 출판사치고는 꽤 괜찮은 실적이다.

2013년 목표는 생존선 돌파 해외 출판계에서는 담당 편집자가 이동하면 저자가 그 편집자를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편집자와 저자 간에 신뢰 관계가 돈독하다. 김 대표가 독립한다고 했을 때, 믿고 ‘앞으로 내 책을 내달라’고 한 이가 있다. 정재승 교수(카이스트)다. 저자와 편집자 관계로 1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사이다. 첫 책 〈쿨하게 사과하라〉도 정 교수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씨와 함께 쓴 책이었고, 〈과학 콘서트〉(개정판)와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등이 어크로스에서 출간되었다. 2013년 여름에는 ‘창의적 리더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주제로 신작을 펴낸다.

김형보 대표는 각 분야를 ‘가로지르는’ 책을 펴내고 싶다. 가령 ‘리더’와 ‘뇌과학’을 연결하는 정재승 교수의 신작처럼. 그런 소망을 출판사 이름에 담았다. 독자와 저자 사이를, 독자와 출판사 사이를 잇고 싶다는 뜻도 포함했다.

2013년, 김 대표는 경제·경영서와 인문 교양서 출간 비중을 6대4 정도로 잡고 있다. 정재승·이원재·안광복·김선자·이나리·한윤형 등의 새 책을 계획 중이다. ‘3년차 출판사’의 2013년 목표는 생존선 돌파. 일정 정도 규모의 안정화를 이루는 해로 계획한다. 그는 출판시장을 ‘모세 혈관이 다 죽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대형 서점 체인과 인터넷 서점만 남은 현실에서 출판 양극화가 거세다. 베스트셀러로 집중되는 구매 패턴이 고착되면서, 중간 규모 출판사들이 운신하기 어렵다. 그나마 ‘나라 전체를 흔드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나 선거가 없는 게 출판으로서는 다행’이다. 김 대표는 “자기 색깔을 내면서 인문서 출판사로 정착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장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3년엔 창업가나 기업가 이슈가 경제·경영서의 한 흐름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게 되면 활력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카드가 청년 세대의 창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다. 고군분투, 2013년이 시작됐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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