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3시간째 직진 중’이라 쓰인 스티커를 엊그제 보고야 말았다. 시원하게 뚫린 자유로에서 50㎞ 속력으로 질주하는(?) 차량 뒤에 붙은 그 스티커는 아주 크고 형형색색으로 선명했다. 이내 옆 차선으로 옮겨 쌩하니 지나가면서도 ‘3시간째 직진 중’이라는 저 한마디에 ‘내 뒤에 있으면 복장 터질지도 몰라요’라는, 제법 깊은 뜻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초보 운전’이라는 삭막한, 그래서 사람들의 핀잔을 유발하던 스티커보다는 훨씬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도 곁다리로 따라붙었다. 이게 다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를 일찌감치 읽어둔 덕이다.

반전·평화에서 대통령 지지까지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는 자동차 범퍼스티커에 담긴 짧은 한마디 말로 철학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철학 안내서다. 1940년대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가 처음 탄생한 이래 범퍼스티커는 운전자의 소신을 밝히는 중요한 수단이자 하나의 매체였다. 1970∼1980년대에는 반전과 평화를 외쳤고, 2000년대 들어서는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범퍼스티커에 붙여놓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아기가 타고 있어요’나 ‘초보 운전’ 유의 범퍼스티커만 붙여놓지만 미국의 운전자들은 종종 ‘전쟁에 무조건 반대함’ ‘티베트에 자유를’처럼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범퍼스티커를 통해 밝힌다. 정치 성향만 밝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종교적 신념일 때도 있고, 사회적 견해와 개인 취향, 윤리 문제, 라이프스타일 등이 등장하고 때론 실없는 말장난도 붙여놓는다. 저자는 이런 다양한 주제를 다룬 범퍼스티커의 한 줄 문구를 씨줄과 날줄 삼아 철학적 논쟁을 제법 심도 있게 풀어낸다.


실제로 저자는 ‘아기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라는 익숙한 범퍼스티커에서 ‘행동 편향’이라는 심리학 용어를 끌어낸다. 실제 아기가 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는 범퍼스티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믿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운전자의 인식을 높이고 아이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가 타고 있어요!’ 범퍼스티커 대신 ‘인간이 타고 있어요!’라고 바꾸는 것을 제안한다. 그것이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보편적 진리에 맞는다면서 말이다.

범퍼스티커의 단골은 누가 뭐래도 윤리 문제다. 그중 낙태는 정치적 견해가 더해지면서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였다. 당연히 여러 범퍼스티커가 태어났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곳은…엄마 자궁 속!(The most dangerous place to be is…mother’s womb!)’이라는 범퍼스티커가 있었는가 하면 ‘만일 남자가 임신할 수 있다면 낙태도 성사(聖事)될 것이다!(If man could get pregnant, abortion would be a sacrament!)’ ‘낙태에 반대해? 그럼 하지 마!(Against abortion? Then don’t have one!)’ 같은 범퍼스티커도 거리를 활보했다. 저자는 낙태에 대한 찬반 논리를 넘어 생명과 철학에 얽힌 함수를 조곤조곤 설명한다.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의 뒤표지에 실린 ‘트위터 이전에 범퍼스티커가 있었다’는 문구는 확실히 인상적이다. 140자로 세상을 바꾼다는 평을 듣고 있는 트위터 이전에, 그보다 적은 글자 수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한 범퍼스티커가 있었다는 것이다.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철학함’을 독려하는데, 그보다 더한 미덕은 철학이 관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쉽고도 친근한 것임을 보여주는 점이다.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3시간째 직진 중’이라는 범퍼스티커를 붙인 초보 운전자 뒤에서도 거칠게 경음기를 울리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기자명 장동석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