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15926535…. 끝없이 이어지는 무리수. 파이(π)는 우리가 절대 그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없는 기호다. 결국 근사값만을 허락하는 존재다. 한 사람의 인생도 파이와 같을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알아내진 못할 테니까. 비밀은 끝까지 비밀로, 수수께끼는 끝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테니까. 나 역시 그들 인생에서 소수점 이하 몇 자리, 한 줌의 근사값만을 볼 뿐이겠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 이름이 ‘파이’다. 친구들이 놀려대는 우스꽝스러운 본명(그 이름이 왜 놀림받는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대신 수학 기호 ‘파이(π)’로 불리기를 원했고, 소원대로 되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 그러니까 ‘파이의 인생’을 그린 이 영화는 파이가 열여섯 살 되던 해 바다에서 보낸 한 철, 227일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담았다.


모든 건 폭풍우 치는 그날 밤에 시작되었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네 가족은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키우던 동물을 화물선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목적지는 캐나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난 가족의 꿈이 폭풍우 속에서 배와 함께 가라앉고 말았다.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른 건 막내 파이뿐이다. 아빠도, 엄마도, 형도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그때 구명보트를 잡아탄 호랑이 한 마리. 그렇게 파이는 리처드 파커(호랑이가 왜 이런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도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시길)라 불리는 벵갈 호랑이와 단둘이 배에 남는다. 손바닥만 한 구명보트. 굶주린 호랑이와 겁에 질린 소년. 목숨이 위태롭다.

풍경은 황홀하다. 그리고 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다.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쓴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를 욕심낸 감독이 많았다.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알폰소 쿠아론, 〈아멜리에〉의 장 피에르 주네 등등. 하지만 결국 이 매혹적인 모험담을 영화로 옮긴 사람은 이안이다.

벵갈 호랑이의 그 마지막 모습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의 감독이 3D 어드벤처 장르에 도전한다고 했을 땐 솔직히 거장의 과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시작하고 10분 만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 이후 그동안 수많은 감독이 넘기려 했던,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까지 아무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던, 3D 비주얼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바로 이안 감독이 넘기고 있었다.

아이맥스관에서 3D로 본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미지는 정말 끝내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였는데, 이안은 그 끝내주는 이미지로 기어이 끝내주는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감독이었다. 작은 구명보트에 파이와 호랑이와 관객을 함께 태우고 영화는, 때론 맹렬하게 때론 부드럽게 노를 저으며 간다. 살짝 뭉클하면서 슬쩍 모호한 라스트 신을 향해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나아간다. 가족 영화에서 모험 영화로, 그리고 다시 성장 영화로. 놀라움에서 시작해 어떤 깨달음으로, 다시 아련한 그리움과 알 수 없는 서글픔으로. 그 사려 깊고 웅숭깊은 만듦새가 좋았다. 비밀은 끝까지 비밀로, 수수께끼는 끝까지 수수께끼로 남겨두는 연출이 좋았다. 227일의 모험으로 파이가 자기 운명의 근사값을 구하는 동안, 끝을 알 수 없는 내 인생의 원주율을 상상하며 꿈꾸게 하는 배려가 참 좋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지금도 눈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쓸쓸한 듯 위엄 있는 그 마지막 뒷모습이 제일 좋았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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