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경제위기론으로 시끄럽다. 위기론의 진원지는 놀랍게도 대통령이다. 면피용·총선용’으로 위기론을 퍼뜨린다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동안 숱한 위기론이 틀렸듯 이번 위기도 극복해낼 저력이 우리에게 있다.
한국 경제는 지난 40년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고도 성장을 누려오면서도 끊임없이 ‘경제위기론’에 시달렸다. 지금까지 경제 위기가 거론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간 해가 과연 몇 번이나 있었나? 그럼에도 한국 경제가 파국을 맞기는커녕 눈부신 성장을 해온 것을 보면 경제위기론은 한국에서 일종의 유행처럼 남용되었음에 틀림없다. 최근 다시 경제위기론이 나온다. 그런데 과거의 위기론은 언론·야당·학계에서 제기했고, 정부·여당은 위기의 존재 자체를 극구 부인하며 국민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에는 양상이 정반대다. 이번 위기론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대통령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이었으나 최근 5년간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 4.9%에도 못 미치는 4.3%로 주저앉았다. 이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위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찍이 보지 못했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차관 워크숍에서는 “석유 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다”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참여정부는 일하기 좋은 경제 환경 물려줬다

이 대통령은 놀랍게도 취임사에서부터 지난 10년간의 전임 정부를 깎아내리는 표현을 쓰더니 이번에는 5년간의 저성장을 탓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고속으로 질주하는 중국·인도가 포함된 세계 성장률과 비교하기보다는 OECD 국가와 비교하는 게 온당하다. 한국의 5년간 성장은 OECD 30개국 중 9위에 해당하며, 평균 이상이다. 더구나 참여정부의 출범 때 상황을 보면 벤처·카드·부동산이라는 엄청난 3대 거품이 꺼지는 시기여서 애당초 고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 참여정부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 욕을 먹으면서도 인위적 경기 부양을 삼가고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해서 뒤에 오는 정부에 일하기 좋은 경제 환경을 물려주었다. 그래서 현 정부는 대외적 환경은 많이 어렵지만 국내 상황은 부담 없이 마음껏 경제 운용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출발한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 정부를 비난하면서 현재의 경제 상황을 비관하는 것은 예의와 품위의 문제일 뿐 아니라 그 의도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즉,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한 이른바 경제 대통령이 경제 실적을 올리는 데 자신이 없어지자 변명할 핑계부터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특히 위기일수록 ‘정치 안정’이 중요하다고 대통령이 강조하는 대목에 가서는 코앞에 닥친 총선용 선거운동이 아닌가 하는 의심조차 든다. 둘 다 의심으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때가 때인지라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고, 참외밭에서는 신발끈을 매지 말라는 경구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인데, 사방을 둘러봐도 좀처럼 참신한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 도덕성이 결여된 장관·참모의 임명 강행, 자존심 없는 영어 남용, 새벽 구보와 새벽 회의, 50개 생필품 물가 관리라는 1970년대 관치 경제의 부활 조짐, 세계 유가가 오르는데 유류세 인하로 가격의 신호 기능에 역행하는 인기영합주의, 상식 밖의 경부운하를 고집하면서 총선 공약에서는 감추기, 기업인 102명에게 대통령 직통전화 개통 등등 문제를 지적하자면 끝이 없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자영업자·농민도 대통령에게 하소연할 게 많을 텐데 왜 기업인만인가? 나라를 이끌 큰 철학은 보이지 않고 시장원리 역행과 시대 흐름에 거슬러 가기가 왜 이리 많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보여주기에 치중하면 이거야말로 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숱한 위기론이 틀렸듯 이번의 위기도 극복해낼 저력이 우리에게 있다. 제대로 대처하면 된다. 단기 실적 위주의 보여주기식 국정 운영은 안 된다. 진광불휘(眞光不輝). 진짜 빛은 번쩍거리지 않고, 큰 강은 조용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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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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