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서동주서세원씨(위)는 때 아닌 안중근 열풍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했다.

위대한 인물이 많다. 그 중에서 나는 고구려 명장 양만춘 장군과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 양만춘 장군은 안시성에서 당 태종의 100만 대군에 포위당했지만 농성을 하면서 성을 지켰다. 결국에는 화살 한 발로 당 태종의 눈알을 맞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강대국을 상대로 한 전투가 상당히 충격적이고 멋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안 의사 몸에 북두칠성 점이 있다는 것에 더 끌렸다. 전설적인 영웅의 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신화에는 몸에 별이나 독수리 모양의 징표가 많이 등장한다. 

나이가 들면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관심은 계속 커졌다. 그러나 북한 출신인 안 의사 이야기는 금기 사항이었다. 안 의사의 행적, 유해 발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빨갱이로 몰리던 시대가 있었다. 사실 안중근 의사는 평화주의자인데 우리나라에서조차 그를 테러리스트처럼 묘사했다. 심지어 석학이라는 사람조차 안 의사를 빈 라덴에 빗대어 폄훼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안 의사에 관해 전문가라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또 전문가를 만나도 그리 해박하지는 않았다.

〈아리랑〉 〈춘향전〉 〈황진이〉 같은 영화는 수십 차례 제작됐다. 춘향이에 대해서는 일거수일투족을 아는데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별로 없었다. 안 의사의 정신을 좀 쉽게 어린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1990년대 말부터 안 의사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02년부터는 틈만 나면 중국에 가서 수십 번 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하얼빈에서 다롄까지 자동차를 타고 안 의사가 지나간 길을 체험하며 더욱 안 의사와 가까워졌다.

우리나라는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위인을 보는 시각이 바뀐다. 박정희 정권의 이순신 장군처럼.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싸우는 군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배에는 노 젓는 사람도 있었다. 그 노 젓는 사람도 영웅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만 영웅이어야 했다.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은 허구다”

특히 안중근 의사는 유행가의 주인공인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 어떤 정권에서 안 의사의 일가친척을 찾아본 적이 있었나? 없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해본 적 있나? 없다. 지난 정권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한다고 했다. 이제 정권이 바뀌니 더욱 노골적으로 유해 발굴 운운한다. 안 의사를 띄우면서 기념관을 지으려 하고, 유해만 찾으려고 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2004년 5월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과 관련해 북한을 방문한 서세원씨(오른쪽 두 번째)와 윤원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맨 오른쪽).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한다고 하는데 이거 ‘구라’다. 유해를 찾을 확률이 1%도 안 된다는 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안다. 나는 안중근 의사 자료를 모으기 위해 중국에 스무 차례 넘게 드나들었다. 전문가를 만나고 고서를 뒤졌는데 안 의사의 유해가 묻힌 장소는 뤼순 감옥 옆 감옥묘지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 장소는 이미 개발로 인해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가 들어설 때 감옥 묘지의 유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 정부의 노력이 닿았어야 하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해 봄 정부의 높은 분과 함께 뤼순 감옥에 갔다. 당시 중국 고위 관료는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직접 설명했다. 내가 따로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서세원씨는 이 고위 관료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여행을 비밀로 하겠다는 각서까지 썼다고 했다.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서씨와 함께 뤼순에 간 정부의 고위 관료는 김만복 국정원장이었다. 2007년 3월 말 서씨는 김만복 국정원장, 안병욱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윤원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등과 더불어 뤼순 감옥과 군사 보호구역을 둘러봤다.)

안 의사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북한에 열 차례 가깝게 드나들었는데 안민석·임종석 의원과 동행하기도 했다. 사실 안 의사의 유해 발굴에는 북한이 더 적극적이다. 안 의사는 북한에서도 대단한 영웅이다. 안 의사의 고향이 북한이어서 그런지 그들은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북한에서도 유해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당 고위 간부는 “안 의사의 유해는 99% 없다”라고 했다.

나는 나머지 1%의 희망을 일본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안 의사의 총탄을 맞은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영웅이다. 총에 맞은 내복도 보관해 전시할 정도다. 안 의사 재판과 사형 기록을 보면 일제는 아주 세세한 것까지 보고하고 기록했다. 적어도 어디에 매장했는지 정확한 위치를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2006년 3월26일 중국 하얼빈 공원에서 열린 안 의사 추모식.


일본은 안 의사 유해 묻은 곳 안다?

일본은 안 의사의 묘지가 성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기록에 남긴 뤼순 감옥 옆 감옥묘지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된다. 일본에 가져가서 묻었거나, 몰래 옮겨두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일본인이 양심이 있다면 이제는 안 의사와 관련된 모든 극비 문서를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과거사 정리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이 진정으로 친구가 될 첫 단추일 수도 있다. 안 의사 문제도 본질은 일본과의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사후 100년이 다 되었는데 입을 열지 않는 일본인들이니 아마 어려울 것 같다.

뜬금없이 정권 바뀔 때마다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이번에도 정부가 왜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신문을 보니 안중근기념관을 크게 짓는다고 한다. 안 의사가 좋은 집에 누워 있다고 좋아할 분이 아니다. 힘없는 백성과 함께 살다가 조국의 숙적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의롭게 죽은 안 의사는 ‘시대의 예수’였다. 우리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매맞고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우리는 안 의사의 정신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유행가처럼 안 의사를 말한다.

 

 

기자명 서세원 (영화 〈도마 안중근〉 감독·개그맨)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