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말했다. 대통령이 되려는 박근혜 후보에게는 두 개의 길이 있다고. 하나는 ‘모험을 걸어서라도 이기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안전하게 지는 길’이라고. 박근혜 캠프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모험을 걸어서 지는 길’보다는 ‘안전하게 이기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 박 캠프의 판단으로 보인다.

과연 안전하게 이기는 길을 갈 수 있을까?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던 한 관계자는 야권 후보 단일화 이후 박근혜 후보가 보여준 행보를 이렇게 비유했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깃발과 국민대통합 깃발을 들고 전장에 나갔다. 그런데 가보니 적군은 성 안에서 문재인군과 안철수군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다. 그걸 넋 놓고 구경하다가 깃발을 내려놓고 갑자기 성으로 철수해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전에 들어갔다.”  
 

 

그가 짚은 것은 세 가지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이라는 화두를 내려놓았다는 것과 중도 성향 유권자 포용 전략을 바꿔서 ‘보수 대연합’ 방식으로 대선을 치른다는 것이다. 중도 성향 지지층이 많았던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는 국면에서도 박근혜 캠프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를 영입하는 등 ‘보수 대연합’에 열중했다.  


박 후보 진영이 적잖은 내홍을 겪고, 대선 전략도 수성 쪽으로 바꿨지만,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캠페인이 상당히 성공적이다. 추석 이후 박근혜 후보의 선거 캠페인 중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NLL(북방한계선) 논쟁. ‘국방에 단호한 보수 대 오락가락하는 진보’ 프레임으로 여러 논점을 제시하며 논쟁을 길게 끌고 갔다. NLL 논쟁은 선거전을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서 보수 표를 결집시키는 효과와 함께 노무현 정부를 환기시켜서 이후 ‘박정희 대 노무현’으로 선거 구도를 짤 토대를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여성대통령론’이다. 박근혜 캠프에서 처음 여성 대통령을 내세웠을 때 이 이슈는 ‘투표 시간 연장’ 이슈와 ‘야권 후보 단일화’ 이슈에 묻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트윗양과 검색량 등 빅데이터를 보면 이에 대한 언급이 다른 이슈에 비해 훨씬 적었다. 그런데 황상민 연세대 교수의 발언으로 ‘생식기 논쟁’ 등이 벌어지며 널리 거론되기 시작했고 박 캠프의 꾸준한 캠페인에 힘입어 대중에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NLL 논쟁으로 보수 표를 끌어모으고 여성대통령론으로 여성 표를 결집해 박 후보 측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재·보선 때 빼앗겼다가 지난 총선 때 되찾은 충청과 강원권의 지지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대선 최대 승부처로 불린 야권 단일화 국면도 무사히 넘겼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 대해 “안 후보의 새 정치 실험이 문재인과 민주당의 구태에 막힌 것”이라고 규정하며 안철수 지지층의 빈틈을 치고 들어갔다.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안 후보 지지층 가운데 50~ 55%가 문재인 후보로 이동하고 20~25%가 박근혜 후보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25% 정도는 유동층). 이전에 결집된 지지세와 안철수 후보 사퇴 후 유입된 지지세가 합쳐져 공식 선거전에 돌입한 시점에 문재인 후보에게 3% 내외의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박근혜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에 맞서 ‘서민후보론’을 내세웠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선거전 초반부터 대선 광고에 등장한 의자와 후보 안경테, 그리고 후보가 입고 다닌 패딩점퍼에 대한 고가 논란이 불거지면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인 이름으로 구입한 빌라의 다운계약서 문제와 부산 상가에 대한 다운계약서 의혹까지 불거졌다. 초반 흐름은 확실히 박근혜 후보가 주도했다.  

흔히 한국 선거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은 ‘조직·동정·바람·심판’ 네 가지다. 이를 대입해보면,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의 탄탄한 조직을 활용해, 박정희·육영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면도칼 테러에 대한 동정심을 이끌어내며, ‘선거의 여왕’답게 현장 바람을 일으켜, 노무현 정부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로 이끌겠다는 방향성이 분명해 보인다. 안철수 사퇴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캠페인 방향을 오락가락하는 문재인 후보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흐름이다.

일가친척 검증 공세, 견딜 수 있을까

서서히 대세론을 형성해가는 박근혜 후보에게 남은 위협 요소는 대략 넷 정도로 꼽힌다. 하나는 사퇴한 안철수 전 후보의 문재인 지지 활동이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 지지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경우 안철수 사퇴 이후 유보 의견이던 유권자들이 문 후보 쪽으로 급격하게 쏠릴 수 있다. 안 전 후보는 12월3일 대선 캠프 해단식을 시작으로 문 후보 지원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캠프가 예의주시하는 대목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경선기획단장을 맡아 야권에서는 유일하게 박근혜 후보를 이긴 경험이 있는 이태규 전 안철수 캠프 미래기획실장은 “문재인 후보에 대해 박근혜 캠프에서는 ‘집토끼로도 이긴다’고 판단한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투표를 안 하고 빠질 것이고 이념 공세와 노무현 정부 실정을 부각하면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가진 박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이 구도에 치명적인 것이 바로 안철수의 재등장이다.

한국 선거의 필승 키워드인 ‘조직·동정·바람·심판’을 안철수 버전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빛의 속도로 재조직되는 2030 세대가, 안철수에 대한 동정심을 바탕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안풍’을 일으켜, 문재인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으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한다”라는 시나리오다. 

박 후보에 대한 두 번째 위협 요소는 텔레비전 토론이다.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 내용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면에서는 뛰어난 반면, 현장 질문에는 약한 면모를 보여왔다. 정치인들은 보통 그런 상황에서 넉살 좋게 눙치고 빠져나가는데 박 후보는 눈을 깜빡거리거나 말을 더듬는 등 당황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곤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토론할 때 이산화탄소와 오존가스를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로 잘못 말한 것은 두고두고 입길에 올랐다. 지난 11월26일 단독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이런 문제가 노출됐다.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토론에서도 실점한 것은 박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디컴-펄스K의 소셜 미디어 분석 데이터를 보면 박근혜 후보의 단독 텔레비전 토론 이후 이를 언급한 트윗양이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 트윗양에 버금갈 만큼 많았다. 그런데 언급 내용은 부정적인 쪽이 많았다. 중앙선관위가 주관하는 세 차례(12월4일, 10일, 16일)의 공식 토론 이후 SNS 등에서 어떤 반응이 일지가 궁금하다. 특히 안철수 전 후보의 활동 재개 이후 이뤄지는 만큼 유보적이었던 안철수 지지자들이 텔레비전 토론을 보고 지지 후보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위협 요인은 이명박 정부 심판론 혹은 교체론이다. ‘서민후보론’이 먹히지 않자 문재인 캠프에서는 ‘정권교체론’으로 선거 전략을 급선회했다. 박근혜 캠프에서는 이에 대해 무대응 전략을 펴지만 지난 총선 때와 비교하면 불리한 상황이다. 당시에는 당명과 당 로고를 바꾸며 과거와 단절해 효과를 보았지만 대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정부와 선긋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이후 박근혜 후보는 청와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내곡동 특검’ 연장 문제에 대해서도 소극적이었고 물의를 일으킨 MBC 김재철 사장의 퇴임문제도 방관하는 등 현 정부와 거리두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의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적극 대응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심지어 청와대가 NLL 논쟁에 가세하는 등 박근혜 캠프를 지원사격하기도 했다.


문재인 캠프가 ‘정권교체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새누리당이 애초 설정했던 ‘박정희 대 노무현’ 프레임은 희미해지고 ‘이명박 대 노무현’ 프레임이 들어서고 있다. 이 구도는 박근혜 후보에게 그리 유리할 것 같지 않다. 〈시사IN〉이 지난 10월 실시한 신뢰도 조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뢰도는 33.7%로, 32.9%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등한 수준이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4.5%, 불신도는 17.7%에 이르렀다.

박 후보가 견뎌야 할 네 번째 위협 요인은 검증 공세 등 네거티브 캠페인과 캠프의 분열이다. 5년 전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가 본인에게 집중되었던 데 비해, 박 후보는 일가친척에 대한 내용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동생 박지만씨가 회장으로 있는 EG 소유 건물에 룸살롱이 있다는 사실 등 새로운 문제가 불거졌다. 박근혜 후보의 5촌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은 박 후보의 두 동생 근령·지만씨 사이의 송사와 맞물려 이런저런 의혹을 낳는다(30~ 33쪽 기사 참조). 5년 전 이명박 후보와 경선할 때 불거졌다 잠복한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34~35쪽 기사 참조)

선거전 초반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되면서 잠복해 있지만, 언제든지 불거질 캠프 내 갈등 요인도 적지 않다. 대선 캠프를 친박 정치인 위주로 꾸리면서 비박근혜 의원들 사이에 홀대당했다는 서운함이 팽배하다. 캠프에 영입되리라는 보도가 나온 뒤 실제 영입되지 않은 친이 성향 의원들은 다들 “후보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수도권의 비박 의원들이 뒷짐을 진 사이 친박 의원들은 과도한 충성 경쟁을 벌인다. 한 선대위 관계자는 “소셜 미디어에서 문재인 지지자가 더 많아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다면 오프라인에서는 박근혜 착시현상이 있다. 후보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오기도 하지만 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이 경쟁적으로 청중을 동원해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세를 말하기에는 박근혜 후보가 감당해야 할 위기 요인이 만만치 않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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