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안철수 / 1962년 부산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영대학원 경영공학 석사. 국내 1위 보안업체 안철수연구소 창립자. 이공대생들이 가장 닮고 싶은 경영자. 2005년부터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스쿨 경영학 석사 이수 중.
존경스럽기는 한데 연애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남자. 너무 진지한 ‘바른 생활 사나이’에다, 흠잡을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그는 달라 보였다. ‘바깥바람’을 쐰 덕인지, 사십 중반에 늦깎이 학창 생활을 한 덕인지 그의 얼굴에서는 청년의 풋풋함과 생기가 묻어났다. 사람의 성격은 잘 바뀌지 않는 법이어서 여전히 ‘훈장님 말씀’을 더 많이 쏟아내긴 했다. 그러나 간간이 앓는 소리를 하며 투덜거리는 여유를 보였고, 한국 사회 돌아가는 모양새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3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은 그로 하여금 더 젊어지게 하고, 더 넓은 시야와 안목을 바탕으로 더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준 듯했다.

매년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히는 국내 1위 보안업체 안철수연구소의 창립자이자 이공대생들이 가장 닮고 싶은 경영자로 꼽는 안철수 의장(46). 2005년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로 유학을 떠났던 그가 오는 5월 학위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지난 3월14일, 서울에 잠시 들른 그를 안철수연구소 의장실에서 만났다.


-40대 중반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는데, 나이 들어 공부하기가 힘들지 않았나?

왜 힘들지 않겠나. 겁 없이 학위 과정에 들어가 공부하다 보니 눈도 침침하고 허리가 휘어 죽을 지경이다(웃음). 그러나 공부를 해보니, 썰물이 빠지면서 갯벌의 굴곡이 드러나듯 내 정체가 속속들이 드러났다. 이런 것도 모르고 경영을 했나 싶더라. 어떻게 하면 중소·벤처 기업 경영자나 중간 관리자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해법을 찾기 위해 유학을 떠난 것이었는데 해법을 찾았다. 내가 어떤 부분을 몰랐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게 됐으니, 그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돕겠다는 것인가?
5월에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 대학으로 갈 예정이다. 공과대학에 자리를 잡고 기업가 정신 내지는 MOT(Management Of Technology) 분야를 가르칠 계획이다.
내가 공부했던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분야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창업자가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회사를 차리면 재무·생산관리·마케팅·세일즈 등 각 분야 전문가가 다 붙는다. 전문가들이 모이다 보니 창업자가 실수를 해도 다른 분야 전문가가 탄탄하게 메워줘 실패 확률이 낮아진다. 반면 우리나라 벤처업계는 창업자부터 각 분야 파트너까지 아마추어 수준이어서 창업자가 실수하면 모든 부서의 사람이 똑같이 실수해 실패 확률이 높다. 그만큼 전문성이 중요하다.

국내 중소·벤처 기업의 발목을 잡는 문제점이 세 가지 있다. 경영자와 직원의 전문성 부족, 낙후된 산업육성 인프라,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경영자 및 직원의 전문성을 키우는 일은 내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벤처·중소 기업에 특화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단 며칠만 공부해도 실무에 바로 연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예컨대 3분의 1은 이론 교육, 3분의 1은 동종 업계 사례를 통해 그 전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3분의 1은 실제 자기 업무에 반영해보는 훈련이다. 그래서 3일 교육이 끝나면 자기 업무까지 마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짤 것이다. 한 10년쯤 내다보고 각 분야 전문가를 길러내는 일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 벤처·중소 업계의 인재풀이 풍성해지지 않겠나.

ⓒ시사IN 윤무영
-벤처·중소 업계의 인프라나 근무 여건이 열악해 똑똑한 사람들이 가지 않는 것도 문제인데….
그렇다. 교육만 한다고 중소·벤처 업계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프라 부분(금융 관행·벤처 캐피탈·아웃소싱 업체·대학 교육·정책)과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바꾸는 일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세 가지가 동시에 해결되지 않으면 벤처·중소 기업이 발전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 정책대로라면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가 더 고착화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한다.
나도 같은 염려를 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무법천지를 만드는 것과 동일시되어서는 곤란하다. 작은 정부에서 중요한 점은 공정한 룰을 만들고 기업들이 잘 지키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무조건 규제만 다 푼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고용인원이 130만명이라면 중소·벤처 기업의 고용인원은 2000만명에 이른다. 중소·벤처 기업에 근무하는 2000만명이 실망을 느껴 이번에 정권이 교체된 것 아닌가. 새 정부가 이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정권은 또 바뀔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기업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는 시각에서 대기업에 관련한 온갖 규제를 푸는 데 적극적이다.
대기업만 산다고 우리 경제가 사는지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양극화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의 단기 시각에서 비롯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관행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다 죽어나갔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대기업이 사상 최대 수출을 해도 그 열매는 외국 중소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대기업이 글로벌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대기업만 살리면 우리 경제가 좋아질 줄 알고 국민 세금으로 환율 방어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데, 그 혜택도 결국은 외국 기업이나 대기업에만 간다. 정부는 한국 경제 발전이나 고용에 대기업이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객관적 분석을 하고, 거기에 맞춰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만 내서는 안 된다.

-중소·벤처 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은 무엇인가?
그동안 정책 제안 정말 많이 했는데, 내가 마이너리티 오피니언이라 그런지 잘 안 통한다(웃음). 젊은 사람들이 첨단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구멍가게를 내더라도 건실하게 운영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 예컨대 창업했다 망하더라도 패가망신하지 않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그 사람은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새로 창업할 수 있다. 그러면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테니 성공하는 중소·벤처 기업이 늘어나지 않겠는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의 창업지수가 세계 1위였는데, 지금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대표이사 연대보증 제도 때문에 창업했다가 망하면 평생을 금융사범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창업할 사람이 많이 나오기 어렵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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