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경제공황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나돌고, 금리 관리 실패와 엉망이 된 거시 경제 기조로 금융 공황 에너지는 폭발 직전이다. 자산가들에게는 몇 곱 장사의 기회이지만 몸뚱이밖에 없는 서민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한국의 경제공황 시나리오가 경제학자들이나 실물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겨울 무렵이다. 당시 수도의 부동산 가격은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성급한 공급론과 만나면서 폭발 직전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때부터 경제 위기 시나리오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대선 직전과 대선 직후, 그리고 대선 1년 후와 같은 몇 가지 분석이 떠돌았다.

대선 직전은 현 정부가 선거 승리를 위해서 대규모로 경제 촉진을 하는 경우를 말하고, 대선 직후는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아무 생각 없이 제멋대로 경제개혁을 하려고 할 때의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마지막 시나리오는, 이미 한국 경제에 누적된 장파동(long wave)의 에너지가 어쩔 수 없이 폭발하는 상황이었다. 한국 경제에는 과거 두 번의 구조적 위기가 있었는데, 1980년과 1997년이 그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에는 현 정부 집권 중반기까지 억지로 눌러놓았던 금리에 의한 부동산 투기와 누적된 내수 침체에 의한 국내 경기의 불균형 따위의 폭발 요소가 있다. 외부적으로는 달러를 중심으로 한 미국 경제의 불안 요소와 에너지, 곡물 그리고 예비적 수요에 의한 금값 폭등 같은 불안 요소가 있다.

정부는 10년 전의 고통 되풀이할 셈인가

ⓒ정훈 그림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엔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가장 높다고 하는 올 상반기부터 이미 일본의 건물을 매입하기 위한 기획 투자가 진행 중이었다. 도쿄의 건물 임대료가 최소한 한국의 은행 이자율보다는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일부 법률 자문회사가 이미 서울발 도쿄 투자에 대한 자문 업무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닥쳐올 금융 공황이 단순 환율 위기인 경우는 2 배, 여기에 부동산 버블 폭락까지 겹칠 경우 오히려 4 배로 원금을 불릴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물론 이건 1000억 원 이상을 모을 수 있는 기획 투자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보다 적은 돈의 경우는 최근 배럴당 100달러가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석유 펀드나 역시 고배당이 예상되는 곡물 펀드로 몰리면서, 금융 공황에 대비한 포트폴리오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보다 작은 투자자들은 연초에 이런 좋은 사업 기회를 알면서도 자금 부족으로 골드바(금괴)에 투자했는데, 최근 금값 폭등으로 뜻밖의 즐거운 가을을 맞았다.

상황이 이러니, 실제 금융 공황이나 실물 공황이 오더라도, 한국에서 큰돈 굴리던 사람들은 오히려 몇 곱절 장사를 할 기회가 열린 셈이다. 그러면 겨우 집 한 채 가진 사람들은 어쩌면 좋을까? 100억원대 혹은 10억원대의 자산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국민경제의 공황 국면에서 떼돈 버는 것과 비교하면 속은 쓰리겠지만, 그래도 1억~2억 원씩 융자받아 지난 2~3년 동안 아파트 샀던 사람들이 겪게 될 피눈물나는 고통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서글프다. 부자들은 세계화 국면에서 이러든 저러든 자산이 늘어나지만,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경제 상식뿐인 사람이 이 상황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대선이다. 저마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어수선을 떠는 동안에, 가장 기본적인 거시경제 관리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금리 관리 실패와 엉망이 된 거시경제 기조로 금융 공황의 에너지는 폭발 직전이라는데, 현 정부는 김영삼 정부 말년처럼 아무도 펀더멘털(기초 경제 여건)을 챙기지 않는 것 같다. 정치는 공백이 있어도 되지만, 국민경제에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서민들이 모두 골드바나 에너지-곡물 선물시장에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금융 공황이나, 실물 공황이나, 우리는 결국 정부만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굽어 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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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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