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연천군 왕징면 중동리 마을회관 뒤편에서 개간 작업을 하던 굴삭기에 대전차지뢰가 걸려 폭발한 뒤 군에서 설치한 지뢰 표지판.

“삑삐비 삐익~.” 폭발물 탐지기가 요란하게 신호음을 낸다. 금속성 지뢰가 묻혔다는 신호다. 마을 민가 주변 반경 5m 이내에서 지뢰 신호음이 무려 7발 울렸다. 한 발자국 내딛는 데도 신경을 곧추세우고 진땀을 흘려야 했다.

3월7일 〈시사IN〉은 방치된 ‘지뢰 마을’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현리에 자리한 한 농가 앞마당과 도로 기슭 야산을 방문했다. 논밭과 비닐하우스, 축사 등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놀랍게도 민통선 이남 후방 지역에 있었다. 이곳에 지뢰가 얼마나 매설돼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군 당국에 문의한 결과 이 일대는 미확인 지뢰 지대라 매설 지도와 같은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이곳에는 지뢰 지대라는 사실을 알리는 철조망이나 표지판도 없다.

40년간 지뢰와 ‘동거’한 주민들

취재팀과 동행한 민간 폭발물 탐지 전문가가 호미로 신호음이 들리는 언 땅을 조심스레 긁어나가자 금속성 지뢰 7개가 머리를 내민다. M3 대인지뢰 2개, M7A2 대전차 지뢰 5개였다. 갈퀴로 낙엽을 긁어보니 한 군데서는 아예 땅 위로 솟아나온 네모난 철제 도시락통 모양의 M7A2 대전차 지뢰가 굴러다닌다. 인근 수천 평의 야산에 지뢰가 널렸지만 폭발 위험 때문에 취재팀은 5m 반경 너머로는 더 탐색하지 못하고 되돌아섰다.
 

ⓒ시사IN 안희태공병부대가 지뢰 제거 작업을 하며 산림을 훼손한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 뒷산.

30여 년간 집 앞마당에서 지뢰와 더불어 살아온 두현리 주민 최승만씨(72)는 이곳 지뢰밭 내력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1962년쯤 쿠바 사태 때 군에서 이 마을 주위에 지뢰를 무차별로 매설했다. 우리 집 앞에서 성묘객을 안내하던 보초병이 지뢰 폭발로 죽는 장면을 목격했다. 또 한번은 나무를 하던 마을 사람이 여기서 지뢰를 밟아 발목이 날아가면서 그 뒤로는 주민이 무서워서 접근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군에서 이곳이 지뢰 지대라는 사실을 알리는 빨간색 경고 표지판과 철조망을 쳐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지에서 온 고물상이 철망을 몰래 거둬가버린 뒤로는 아무런 표식도 없이 방치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최근 군 당국에 이 마을 지뢰 매설 정보와 함께 지뢰 제거를 요구했지만 매설 지도를 갖고 있지 않아 ‘미확인 지뢰 지대’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1988년 정부가 이 지역을 민통선에서 해제하면서 지뢰 제거는커녕 매설 실태 조사조차 하지 않고 그냥 풀어버린 것이다. 남북 화해 기류를 타고 지난 몇 년째 이 일대는 백학 농공단지가 들어선다며 땅값이 들썩거리는 곳이다. 서울 등 외지에서 온 투자자와 나들이 행락객이 수시로 오가 지뢰 사고 위험은 더욱 커졌다. 주민 최씨는 “군부대에 아무리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어서 우리 부부는 봄·여름철이면 집에 들어앉아 지나가는 행락객이 지뢰밭으로 들어가면 소리를 질러 막는다”라고 말했다. 답답해진 최씨는 ‘이러다가 기어이 일이 터지지’ 싶어 최근 인근 공사장에서 외줄 띠 50여m를 얻어다가 급한 대로 집 앞 도로변 나무에 묶어두고 지뢰 표지판을 직접 설치했다.

민통선 후방 미확인 지뢰 지대는 두현리 마을뿐만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 주둔했던 영국군이 중공군 탱크와 전차를 막는다며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대인지뢰와 대전차 지뢰를 곳곳에 매설했다. 전쟁이 끝나고 논과 밭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지주들이 지뢰를 몰래 파내 마을 앞 농로변 구덩이에 한꺼번에 묻어둔 ‘지뢰 무덤’이 여러 개 존재한다. 취재팀이 두현리 마을 모퉁리를 탐색기를 이용해 확인한 결과 지뢰 무덤은 식별할 수 없는 그냥 평평한 땅이었다. 몇몇 주민 외에는 모른 채 방치된 지뢰 무덤은 나중에 민간 개발 과정에서 언제든 대형 참사를 몰고 올 뇌관이다.

정부가 지뢰 제거는커녕 실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개발을 허용한 경기 북부 민통선 남방 지역에서 각종 민간 공사 장비가 지뢰를 밟아 터지는 대형 사고는 해마다 끊이지 않는다.

현재 연천군 왕징면 중동리 마을회관 뒤편에는 지뢰 폭발로 굴삭기 한 대가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현장 확인 결과 궤도가 엿가락처럼 휜 가운데 파편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지난 2월15일, 군부대와 연천군청의 허가를 받아 마을 뒤편 과수원 개간 작업을 하던 굴삭기 기사 천기수씨(37)는 점심 식사를 막 끝내고 굴삭기에 오르려는 순간 ‘펑’ 하는 굉음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대전차 지뢰가 폭발한 것이다. 폭발 방향이 반대편이라서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폭발음의 충격으로 고막 이상이 생긴 천씨는 현재 통원치료를 받는다. 천씨는 “지뢰 매설 지역이라면 군부대가 최소한 탐색을 벌여 안전을 확인한 뒤 공사를 허용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처도 없이 들여보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라고 말했다. 인근 군부대에서는 사고 지점이 미확인 지뢰 지대가 아닌 안전지대로 분류된 곳이라고 밝혔다. 지뢰 지대가 어딘지도 모르는 셈이다. 사고 직후 군은 폭발물 처리반을 보내 굴삭기 주위에 철조망을 둘러치고 근처에서 미처 폭발하지 않은 대전차 지뢰를 하나 캐내 돌아간 것이 전부였다.
 

ⓒ시사IN 안희태민통선 후방에서는 해마다 민간 중장비에 대전차 지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뿐이 아니다. 2006년 11월14일, 연천군 석장리 김 아무개씨 밭에서 정지 작업을 하던 굴삭기가 대전차 지뢰를 밟아 파괴되면서 기사 이 아무개씨와 밭주인 김씨가 온몸에 40여 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 또 지난해 4월28일에는 파주시 적성면의 한 밭에서 평탄 작업을 하던 굴삭기 기사가 대전차 지뢰 폭발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굴삭기 궤도가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지뢰 지대 개발 관련 인허가 관청인 연천군청 민군협력단 책임자는 “솔직히 민통선 이남 관내 지뢰 지대 현황에 대해 군부대는 물론 군청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1950년대에는 연합군이, 1960년대에는 국군이 지뢰를 마구 뿌려 연천군 일대에 엄청난 지뢰가 묻혔다는 것을 짐작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뢰밭이 가장 많은 연천군 백학면 일대에만 20여 곳의 미확인 지뢰 지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05년부터 주민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지뢰 제거 민원이 많은 지역을 골라 연천군청에서 군 공병대에 의뢰해 부분적인 지뢰 제거 작업을 벌여온 것이 그나마 대책의 전부이다시피 하다.

행정관청과 군부대가 벌이는 지뢰 제거 작업은 산림 훼손과 지뢰 폐기물 유기 등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민군 협력 사업으로 한창 지뢰 제거 작업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곳이 백학면 노곡리 일대이다. 개발 바람에 의해 이미 번화가로 변해버린 노곡리 노곡교회 뒷산 1만여㎡는 2005년부터, 노곡마을 뒤 야산 3만여㎡에서는 지난해부터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취재팀이 폭발물 탐지 전문가를 대동해 노곡리 지뢰 제거 현장을 둘러본 결과 놀랍게도 각종 지뢰 지대 폐기물이 통행인의 눈에 안 띄는 마을 뒤편 공터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엄청난 분량의 군용 철조망 더미와 지뢰 표지판은 물론이고 유실된 대인지뢰가 박힌 나무뿌리, 폐비닐 등이 뒤엉켜서 버려져 있다. 동행한 폭발물 탐지 전문가는 “M14 플라스틱 발목 대인지뢰는 탐지기에 잡히지 않는 데다 수목이 자라면서 뿌리가 감싸안는 경우가 많아 이 쓰레기는 특수 폭발물 쓰레기로 분류해 전문가가 해체와 처리를 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뿐이 아니다. 노곡교회 뒤편 지뢰 제거 폐기물 더미 옆에는 수개월 동안 작업에 동원된 군인들의 손난로와 군화·통조림 깡통·전투식량 비닐 등 각종 군용 폐기물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토양을 치명적으로 오염시키는 금속 가루 성분이 든 군용 손난로들은 포장지가 썩은 채 토사와 뒤엉켜 있었다.

노곡리 이장 조 아무개씨는 “주민이 불안해서 수차례 지뢰 폐기물을 처리해달라고 진정을 냈지만 땅주인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답변뿐이었다. 최근 민군협력회의에 참석해 다시 이 문제를 꺼내니까 군에서는 그냥 불질러버리라고 하더라”며 발만 굴렀다. 조씨는 특수 폐기물 업자에게 처리를 부탁해보았지만 지뢰가 들어 있는 폭발물 쓰레기는 겁나서 취급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돌아갔다고 전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군 공병여단이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이는 노곡리 뒷산 지뢰 지대도 문제는 심각했다. 이곳에서는 산을 아예 깎아 대규모로 산림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군 공병부대에서는 이곳에서 거둔 흙과 나무뿌리, 비닐 등 폐기물도 마을 어귀 인삼밭 옆에 산더미처럼 쌓아두어 주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마을 공터에 쌓인 지뢰 폐기물 더미

이 지역 지뢰 제거 작업을 맡은 제1공병여단 102공병대대의 문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3개 중대가 지난 한 해 동안 공사를 벌인 곳은 노곡리 뒤편 야산 2만여㎡로 지뢰를 총 385발 캐냈다. 그 가운데 금속 대전차 지뢰인 M7A2가 238발로 가장 많았고, M2A4 29발, M14 대인지뢰 18발, 기타 폭발물 100여 발이었다. 기타는 주로 대공포탄과 박격포탄이었다.
 

ⓒ시사IN 안희태위는 마을 공터에 버려진 지뢰 폐기물과 공병부대가 남긴 각종 폐기물 더미.

군부대 보고서는 지뢰 제거 작업 과정에서 ‘고송과 희귀 소나무 등 보전 가치가 있는 산림은 손대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지뢰만 제거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사IN〉이 확인한 결과 이는 전혀 사실과 달랐다. 지뢰 제거 지대에는 풀 한 포기, 나무뿌리 하나 남지 않았다. 산을 송두리째 깎아 흡사 대규모 공장 부지나 펜션 부지 조성 현장을 방불케 했다. 연천군청 산림과에서는 “산림이 훼손된 곳은 나중에 토지 소유주와 협의해 조림이나 개간용지로 복구하도록 하겠다”라고 해명했다. 지뢰를 제거한 군부대 관계자는 “변변한 장비도 없이 병사를 투입해 안전 위주로 작업하다 보니 산림이 망가졌다. 올해부터는 경의선 철도공사 때 도입한 지뢰 제거차를 투입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군에서는 민통선 후방 지역이 대부분 지뢰 매설 기록을 보유하지 않은 곳이라 주민에게 묻거나 그동안 주민이 죽거나 다친 사고 지역을 탐문해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인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지뢰 지대는 도처에 널렸는데 정부와 군부대는 그 실태 파악조차 못해 현재는 지뢰 제거 시늉만 하는 꼴이다.

군 당국이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병부대를 투입해 작업한 후방 36개 방공포진지 주변 지뢰 지대도 문제는 심각하다. 후방 지뢰 지대는 군에 매설도가 보관돼 있기 때문에 진작 기술적으로 회수했지만 이미 상당히 유실된 뒤에 제거 작업에 나서서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지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서울에 있는 우면산 지뢰 지대의 경우 매설한 지뢰 가운데 여덟 발이 없어졌지만 어디로 갔는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경기도 파주 탄현에 있는 보현산 지뢰 지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자유로 남쪽 후방 파주 LG 필립스단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보현산 자락에 군에서 지뢰를 매설한 때는 1977년이었다. 당시 군은 이 일대가 북한 남침용 땅굴의 유력한 후보 장소라는 이유로 각종 대인지뢰를 2000여 발 매설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마을 주민 6명이 지뢰를 밟아 죽거나 다쳤다. 지뢰 매설 직후 이곳에서 아들 임동규군(당시 9세)을 잃은 만우리 주민 임형수씨(63)는 “4대 독자이던 내 아들이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에 M16A1 대인지뢰를 밟아 그 자리에서 죽고 친구는 큰 부상을 당해 그 집 부모는 영영 고향을 떴다. 그러나 그동안 군부대와 정부에서는 위로는커녕 사고 조사 한번 나오지 않았다”라며 애통해했다.

주민 피해가 이어지면서 후방인데도 땅굴을 파들어올지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뢰를 무차별 매설한 데 대해 주민의 항의가 거세지자 지난해 군에서는 7개월에 걸쳐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이고 민간인 출입을 개방했다. 그러나 군이 수거한 지뢰는 1300여 발. 나머지 600여 발의 행방이 묘연하다. 민가 인근에 대규모 지뢰를 매설해두고도 관리를 하지 않은 탓이다.

지뢰 마을인 금산리 마을 어귀 두 곳에는 ‘이 지역은 2007년 10월까지 보현산 지뢰 제거 작전을 실시한 곳으로 M16A1 대인지뢰 11발과 M14 대인지뢰 50발이 미수거되었기에 차후 이 지역을 개발할 때에는 반드시 군부대에 문의해 시행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있다. 지뢰 제거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도 찾아내지 못한 지뢰가 많아 지뢰 표지판과 철조망을 광범위하게 설치해 유지하고 있지만 등산객에게는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했다. 취재진이 찾은 3월6일 금산리 뒷산에는 봄기운을 찾아나선 상춘객이 자유로이 드나들고 있었다.

한반도 지뢰, 방어 무기 ‘효능’ 상실

국방부에 따르면 군 당국이 관리하는 것으로 확인된 지뢰 지대는 전국 1100여 곳 990여 만 ㎡ 부지에 매설 지뢰 수는 100만여 발이다. 미확인 지뢰 지대는 전국 200여 개소에 2억9983만㎡, 매설 지뢰 수는 100만여 발로 추정된다. 국제 대인지뢰금지기구(ICBL)에서도 지난해 한국의 지뢰 숫자를 310여 만 발로 추산해 발표했다.
 

ⓒ시사IN 안희태연천군 백학면 두현리 한 민가 앞에서 취재팀이 탐지기를 댄 결과 반경 5m 이내에서 지뢰가 일곱 발 탐지됐다.

그동안 군에서 지뢰는 엄청나게 많이 매설했지만 이를 사후 관리하고 제거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과거 민통선 철책선이 북방으로 이전할 때마다 민간인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대규모 후방 지뢰 지대가 생겼지만 지뢰 피해 방지 대책은 전혀 세우지 않았다. 또 군부대의 이전을 위해 지뢰 제거 요인이 생기면 전문 지뢰 제거 경험자 대신 수색대대 보병을 투입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전쟁 이후 최근까지 지뢰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리가 잘린 군인 수가 8000여 명에 이른다. 이 기간에 민간인 지뢰 피해자도 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군 공병부대의 임무 가운데는 지뢰 제거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는 평화시가 아니라 전시 아군 기동로 확보를 위한 것이다. 그러다 군 공병부대가 평화시에 부분 투입되기 시작한 때는 1999년. 전국 각지에 흩어진 후방 방공포진지 지뢰 제거와 국책사업으로 경의선 철도공사 및 개성공단 송전선로 설치 지역의 지뢰를 제거하면서부터였다.

후방 지역 지뢰와 달리 전방 민통선 안팎의 각종 지뢰에 대해 군 당국은 그동안 ‘전쟁 억지전력’이라고 주장해왔다. 국제 지뢰 제거 요구에 대해서도 국내 군 주변 안보지상주의자들은 지뢰를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는 훌륭한 전투 전술전력’이라며 군의 주장을 옹호해왔다. 그러나 〈시사IN〉이 한·미 양국의 군사무기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었다.

주한미군 공병 소속의 한 관계자는 “모든 금속 지뢰는 매설 뒤 1년간 5%씩 전투전술 효능이 감소한다는 것이 미군 공병 교본에 나와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군 전직 공병장교도 “우리는 공병학교에서 미군 시험 평가 자료를 통해 지뢰는 20년이 지나면 방어·장애 무기로서의 효능이 상실된다고 배웠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모든 금속 지뢰는 매설 뒤 20년이 지나면 전투 무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지뢰를 구성하는 금속 파편과 뇌관이 부식돼 시일이 많이 흐르면 제때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지 화약이 없어지거나 폭발력이 감소한다는 뜻은 아니다. 매설된 지 수십 년 지난 대전차 지뢰 위를 전차나 굴삭기 등이 그냥 지나가도 아무 탈이 없다가도 개발 과정에서 중장비가 땅을 파다가 조금만 건드리면 대전차 지뢰가 폭발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대인지뢰든 대전차 지뢰든 모든 지뢰를 방치할 경우 피해를 입을 대상은 적이 아니라 민간인과 민간 장비가 될 확률이 높은 것도 그런 이유이다.
 

ⓒ시사IN 안희태M7A2 경전차 지뢰(왼쪽)와 M3 대인지뢰(오른쪽).

한국군이 지뢰를 마지막으로 매설한 시점은 공식적으로 1988년이 끝이었다. 그렇다면 올해로 마지막 지뢰까지 전투방어 무기로서의 본래 기능은 상실한다고 봐야 한다. 대신 앞으로 기약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민간인의 발목과 목숨, 민간 중장비 파괴 등 대형 사고를 일으킬 애물이 될 것이다. 국방 당국이 지뢰의 전쟁 억지력을 고집한다면 군 전투태세 확립 면에서 볼 때 본연의 기능이 상실된 전후방의 모든 지뢰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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