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한국 친구와 함께 마음 놓고 뛰어놀고 싶어요.”3월2일 서울 대학로에 피부색이 ‘조금’ 다른 아이 20여 명과 그 부모가 모였다. 그들은 길을 지나는 시민에게 전단을 나누어 주며 ‘이주 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서명 운동’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2월 말로 ‘한시적 특별 체류’ 기간이 종료되면서 3월3일 개학식 날 학교에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한국, UN 아동인권협약 ‘외면’

‘한시적 특별 체류’란 2006년 4월, 한국 태생의 이주 아동(초등학교 1학년)이 불법체류자인 엄마와 함께 등교하다 단속돼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 취한 조처이다. 이에 따라 부모와 동반 입국한 15세 이하의 자녀, 한국에서 태어난 15세 이하 자녀의 부모가 체류 연장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특별 체류 기간이 끝나는 날부터 이주 아동과 부모는 다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언제 닥칠지 모를 단속에 마음을 졸여야 한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UN 아동인권협약안은 전세계 모든 아동에게 부모의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생존권·보호권·교육권 따위를 누릴 권리를 부여한다. 헌법 6조에 따라 ‘국제법규’인 UN 아동인권협약안도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주 아동에게 제대로 된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한국어가 더 자연스러운 아동이 부모의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에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하는 우리나라 현실은 아동인권협약을 무색하게 한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이미 2003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와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부끄러운 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

부모가 불법체류자 신분인 아이들(위)은 마음 놓고 학교에 갈 수가 없다.
이주노동자 자녀의 교육을 보장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의 체류 자격 문제다. 하나 마나한 말이지만 부모가 보살피지 않고서는 이주 아동의 교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위해 아이가 교육을 받는 동안 그 부모의 체류권도 함께 보장해준다. 프랑스는 이미 1984년 법으로 불법체류자의 추방 요건을 대폭 강화해 ‘공공 안전이나 국가 안위에 중대한 필요’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미성년자를 추방할 수 없도록 했다. 독일 역시 2000년 1월 개정된 국적법을 통해 ‘독일에서 출생한 외국인은 부모 중 한 명이 독일에서 태어났거나, 14세 이전 독일로 이주한 경우 자동으로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법무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금 한국에 있는 불법체류 아동은 800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시적 특별 체류 허가를 받은 어린이는 고작 100여 명이고, 그나마 1~2년이 지나면 다시 ‘강제 추방’ 위협에 노출된다.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식 조처가 아이들마저 불법체류의 악순환으로 내모는 현실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학업을 포기한 아동은 불법 취업자인 부모를 따라 공장 일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 부모보다 더한 차별에 시달리며 우리 사회를 저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주 아동이 학교에서 마음 놓고 공부하며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까.

기자명 최정의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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