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신정아씨 영장 기각 등을 둘러싸고 또다시 검찰과 법원이 힘겨루기를 해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그러나 두 기관의 대립각은 우리 헌법 이념과 헌법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검찰과 법원의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얼마 전 론스타 사건 때처럼 영장 청구, 기각, 재청구, 재기각의 핑퐁게임이 이번 신정아?변양균씨 사건이나 김상진씨 로비의혹사건에서도 재현될 조짐이다. 압수수색영장이나 구속영장을 놓고 양 기관이 삼갔어야 할 표현까지 써가면서 서로를 비난한다. 법원의 영장 기각을 향해 검찰은 ‘수사방해 행위’라며 수사도 모르는 ‘무책임’한 사법부가 ‘사법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다. 단골 메뉴처럼 영장 기각에 대한 불복 방법인 영장항고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도 한다. 이에 질세라 법원은 헌법 이념을 지키라며 훈계한다.‘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잊었느냐’고 꾸짖는다. 수사 부실을 법원의 영장 기각 탓으로 돌린다며 재판권 침해를 우려한다. 이를 두고 언론은 ‘힘겨루기’나 ‘갈등’으로 묘사하며 국민의 불안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번 영장 갈등이 갈등에 그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득이 될 수 있다.‘싸우면서 큰다’는 말처럼 사법체계를 한 단계 향상시키는 성장통으로 진단해 치유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날카롭게 세운 두 기관의 대립각이 헌법 이념과 헌법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피고인이 유죄확정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받는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이는 피의자나 피고인은 가급적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자유가 보장되는 가운데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살인범으로 의심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진범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신체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죄인에게 무슨 기본권이냐’는 힐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범죄자로 지목되었다고 할지라도 오판을 막으려면 그에게도 방어할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또 범죄혐의를 받는 자는 국가에 비한다면 한낱 힘없는 개인이기 때문에 국가와 대등할 수 있도록 손에 무기를 쥐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될 것이고 피고인도 판결에 승복하고 국가 권력이 국민의 신뢰를 받게 된이다.

ⓒ연합뉴스9월18일 신정아씨 구속영장이 기각된 가운데 출근하는 정상명 검찰총장. 뒤편은 대법원이다.
이러한 헌법 이념에 충실한 개정 형사소송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이 강화되고 인신구속 절차가 까다로워진다. 자백 위주의 범죄 수사와 조서 중심의 재판 관행을 탈피하기 위해 공판이 중심이 되는 재판 절차로 개선된다. 공판 절차 첫머리부터 피고인을 신문하지 않고 증인 신문이나 증거 조사를 마친 후에 피고인을 신문하도록 변경된다. 이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입에 의존하는 수사와 재판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이다. 그러려면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해서 자백이나 진술을 받아내는 수사 관행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군다나 내년부터 도입될 배심 재판에서는 수사 기관에서 자백한 피고인이 배심원 앞에서 범행을 부인해 버리면 배심원의 유죄심증을 얻어내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자백 중심의 수사 관행은 설 땅이 없어지게 된다. 변화될 형사소송법에 맞추어 수사와 재판 실무가 바뀌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가 사법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앞으로 만들어질 양형 기준처럼 구속영장의 청구 기준과 발부 기준이 객관화되고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래야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 그래야만 영장 발부에 앞서 흘린 눈물이나 피의자와 영장 전담 판사의 학연이 영장 기각의 이유였을 것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한 양형 편차처럼 영장 발부 기준이 들쭉날쭉한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예측 가능해져서 피의자들이 전관예우의 특혜가 기대되는 변호사를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있고, 영장 발부를 둘러싼 의혹이 줄어들어 사법 불신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낯 뜨겁게 언론에다 서로를 비난하는 형태는 불신만 키울 뿐임을 알아야 한다.

기자명 하태훈(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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