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화미국 국민은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아 미국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꾸고, 수세기 동안 차별의 굴레를 쓰고 착취와 억압에 시달려온 전세계 흑인의 가슴 속에 ‘신세계 교향악’을 울려퍼지게 할 것인가.
‘인종의 정치학’ 분야에서 잘 알려진 미국의 역사학자 S. 스틸은 두어 달 전 두꺼운 책 한 권을 펴냈다. 오바마처럼 흑백 혼혈인 저자는 〈오바마의 족쇄:우리는 왜 그에게 열광하는가. 그리고 그는 왜 승리할 수 없는가〉라는 책에서 흑인 사회의 정치 전략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우선 타협파. 이들은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의 원죄의식에서 못 벗어나는 백인에게 그 모든 것이 다 과거의 일이라면서 타협과 화해의 손을 내민다. 면죄부를 받은 백인은 감사한 마음으로 타협파와 손잡고 적극 협력한다. 타협파는 백인 사회에 거침없이 받아들여지고, 일부는 흑·백인 모두에게 우상화된다.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와 빌 코스비, 토크쇼의 오프라 윈프리, 국무장관 파월과 라이스 등이 이 유형이다.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도전파. ‘백인은 근본적으로 인종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흑인 사회의 지도자이자, 흑백 문제와 관련해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흑백 간의 거중 조정자 구실을 맡게 된다.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독설가 알 샤프턴 목사가 이 부류에 속한다. 

오바마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 

오바마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야만 하는 대선에서 타협파와 도전파 노릇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족쇄에 물려 있다는 게 스틸의 분석이다. 그의 결론은 돌풍을 일으키는 흑인 정치인을 대중의 ‘우상’으로 떠받들 수는 있어도 ‘왕’으로 모실 수는 없다는 미국인의 잠재의식과 우월심리 때문에 오바마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바마가 넘어야 할 벽은 높고 험난하다. 첫째는 인종 편견이다. 흑인의 피가 16분의 1만 섞여 있어도, 그는 미국인의 잠재의식 속에선 흑인으로 분류된다. 흔히 미국 사회를 ‘인종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흑인은 흑인끼리, 히스패닉은 히스패닉끼리 살아간다. 인도인·아랍인·중국인·한국인·베트남인도 마찬가지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에서도 인종 ‘분별’은 여전하다. “아시아계 소수 민족마저 흑인에 대해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갖고 있다”라고 ‘볼티모어 선’지의 한 흑인 기자가 불만을 털어놓을 정도로.

둘째는 미국인의 보수 성향이다. 표면으로는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일부 계층과 지역에나 해당될 뿐이다. 평균적 미국인은 미국 중심의 가치관과 프로테스탄트적 사고와 생활 태도를 갖고 있다. 미국인 중에는 평생 자기가 태어난 주 경계선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 개발도상국에서조차 여성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이 출현하는데, 미국 역사에서 여성 대통령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종 차별의 벽은 남녀 차별의 벽보다 더 높은 실정이다. 14:1이라는 미국 상원의 여성 의원:흑인 의원 비율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인종차별과 편견의 벽 허물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은 미국만의 정치 문제를 넘어서 세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과연 미국 국민이 두꺼운 인종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헐고 오바마를 선택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다.

2차 대전 이후 한동안 미국이 누렸던 리더십과 도덕적 우월성은 지난 40여 년간 미국이 지구 곳곳에서 자행한 침략과 전쟁, 편파적 중동 정책, 인권 유린과 폭력, 인종 차별, 이기적인 지구촌 환경정책 등으로 크게 훼손되었고 상처를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국민이 오바마를 택한다면 영국 보수당의 다이앤 애봇 의원의 말처럼 “미국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꾸고 세계인의 존경을 끌어낼 계기가 될 것”이며, 수세기 동안 노예 제도와 차별의 굴레를 쓰고 착취와 억압에 시달려온 전세계 흑인의 가슴속에 ‘신세계 교향악’이 울려 퍼질 것이다. 냉정한 분석자 스틸도 자기 예상이 적중하지 않기를 바랄지 모른다.

기자명 워싱턴=김진화(순회 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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