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흙탕물을 마시던 소녀 스라이(오른쪽)는 우물이 생긴 뒤 건강과 활기를 되찾았다(왼쪽).
스라이.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울컥한 다섯 살 소녀. 2년 전 캄보디아에 생명의 우물을 짓기 위해 답사를 가서 만난 아이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은 더웠고 초라했지만 열대의 나무가 피워낸 꽃이 나름 향취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그런데 고작 3시간여 달려온 촌동네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 홍수가 지나간 자리라 길이 사라졌고 사라진 길 위에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흙탕물이 마구 범람하고 있었다. 옷을 걷어올리고 찾아간 스라이의 집은 집이라기보다 우리에 가까웠다. 아니 소나 돼지를 키우는 축사만도 못한, 다 쓰러져가는 곳이었다.

뜸붕 마을에 오기 전에 두세 군데 집을 들러보았다. 나무로 지어진 2층집엔 차양이 달렸고, 차양 끝에 양철관을 매달아 큰 항아리에 빗물이 떨어져 모이도록 만들어놓았다. 약 1000ℓ가 들어가는 이 항아리의 수가 이곳에선 부의 상징이라고 한다. 상수도가 있는 프놈펜 일부를 제외하고는 캄보디아 국민은 이런 식으로 물을 먹고 산다. 빗물을 모아 먹을 수 있으면 잘사는 축이고, 그마저 어려운 사람은 동네 웅덩이에 고인 물을 길어다가 큰 항아리에 부어놓고 흙을 가라앉혀 먹는다. 항아리조차 없는 집은 웅덩이를 휘휘 저어서 먹는다. 그런데 거기엔 소도 들어가고, 돼지도 들어가고, 아예 화장실이란 개념이 없는 이 동네의 모든 오물이 스며들어가는 탁하고 걸쭉한 웅덩이이다. 스라이는 발을 담그는 것조차 꺼려지는 이 물을 마시며 살았다.

취재를 위해 스라이에게 평소대로 물을 마셔보라고 주문했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스라이, 먹지 마, 그만!” 아이가 때에 찌든 바가지로 물을 떠 마시는 게, 그 더러운 물이 아이 뱃속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게, 그걸 두 눈 뜨고 보고 있는 게 고통스러웠다. 캄보디아는 인구증가율이 0%에 가깝다. 아이들이 물 때문에 생긴 뱃병을 앓다가 죽어서이다.

11억명이 안전하지 못한 물 마셔

전세계에서 안전한 식수를 보급받지 못하는 인구는 11억명에 달한다. 그 중 연간 2000만명은 콜레라, 기생충,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한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가 매일 4500명씩 죽는다. 전세계 어린이 사망 원인 중 두 번째에 속한다. 연평균 기온 1℃가 올라갈 때 년간 5000만명이 추가로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피해가 더 심각하리라는 전망이다. 환경재단이 캄보디아, 몽골 등에 우물을 지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구촌 최빈국 캄보디아에는 전세계에서 많은 구호물자가 몰린다고 한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한 물품은 한 시간이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위정자가 부패한 탓이다. 한국에서 가져갈 물건이 없냐고 물었더니 프놈펜에는 없는 게 없어 뭐든 구할 수 있으니, 돈만 가져오라는 대답을 들었다.

2년 만에 다시 스라이를 찾았다. 캄폿 주에 50개를 짓고 올해 타케오 주에 새로 건립한 우물의 완공식에 참석할 요량이었다. 조금 멀지만 2년 전에 갔던 마을을 다시 보고 싶었다. 우물이 요긴하게 쓰이는지 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스라이가 보고 싶었다. 먼지와 진물이 엉킨 머리 위로  파리를 쉴 새 없이 쫓던 작은 아이가 그동안 어떻게 컸는지 궁금했다. 이장댁 마당에는 주민 100여 명이 이미 와 있었다. 현지에 살면서 마을에 꼭 필요한 우물의 지점을 정하고, 실제로 우물 파는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지구촌 공생회 전근수 지부장과 함께였다.

환경재단이 지어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목욕을 하는 캄보디아 아이들.
우물도 둘러보고 물맛도 보고, 가지고 간 사탕도 돌리면서 근황을 들었다. 초행인 일행은 못 느꼈지만, 나는 금방 알아챘다. 무엇보다 아이들 머리칼이 반짝이고 있었다. 물이 좋아서 하루에 세 번씩 머리를 감기도 한단다. 윤기 나는 머리를 쓰다듬다가 스라이를 발견했다. 스라이, 부르며 달려갔고, 아이도 나도 서로를 알아봤다. 안 통하는 말이지만, “스라이, 아줌마 기억하니?” 물었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내 아들과 동년배인 스라이는 당시 덩치가 반도 안 되었는데, 지금은 훌쩍 자랐고 볼도 통통하고 까맣고 예쁜 눈동자는 더 반짝이는 것 같았다.

전근수 지부장의 말에 따르면 현지 사무소에 매일 배가 아프다며 주민이 받아가는 약의 양이 지금은 80% 이상 줄었다고 한다. 얼마나 기쁘고 반갑던지 아이를 한참 바라보고 쓰다듬었다. 우물이 하나 있으면 500여 명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다. 우물 한 개 만드는 데 50만원이 든다.  

환경재단에서는 2년 전 캄보디아에만 캄폿 주에 50개, 작년에 타케오 주에 30개, 올해는 100개 우물을 완공할 계획이다. 앞으로 5년 계획으로 1000개 지원을 목표로 한다. 그 정도면 급한 불은 끌 것이다. 우물을 파는 동안 캄보디아 정부가 농촌에서 경작에 필요한 관개시설을 갖추도록 국내외 다른 단체, 기업들과 협력하려고 한다. 아열대 지역이라 과일이라도 많이 나리라 예상하지만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이곳에는 비가 올 때 가둬둘 저수 공간이 없다. 천수답만 있는 들판에서는 먹을거리가 자라나지 못한다. 그래서 캄보디아 들판엔 새가 없다.

물을 길어오는 것은 주로 아이와 여성의 몫이다. 마을 공동우물이 생긴 덕분에 이들이 매일 몇km씩 걸어서 물을 긷는 수고를 덜었다. 결혼식 등 마을 행사는 주로 우물가에서 열린다. 학교나 사찰 등 사람이 모여야 하는 공공시설 운영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공동우물을 판다는 것은 깨끗한 식수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을 새롭게 지을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며, 보건위생 교육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우물은 지역공동체가 단단해지게 하는 장소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유엔에서 우리에게 우물을 파주었다. 어디에서든 물은 생명과 동의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쉽다.  

후원 계좌 : 외환은행 071-22-02363  농협 013-01-296897  신한은행 087-05-010193
예금주 : 재단법인 환경재단 (02-725-4884)

기자명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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