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불을 끌 때는 원래 ‘2인 1조’가 원칙이지만 지금 소방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빨리 와 주세요!” 순식간이었다. 지난 3월4일 저녁 8시4분, 경기도 이천소방서 상황실과 연결된 방송 수신기에서 신고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모가면 지역대 윤순만 대원(39)은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주차장 한쪽에 벗어둔 방화복을 입고 소방차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20여 초. 자신의 안전을 위한 소방안전화와 산소통은 착용하지 못했다. 그걸 신고 메고선 5t 펌프 소방차를 운전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윤 대원은 혼자 출동하고 불을 끄는 ‘1인 소방서’ 근무자다.

불은 지역대에서 10km 떨어진 목조 건물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무전기를 통해 상황 보고가 오갔다. 현장에서는 박만기 대원(37)이 가장 힘들고도 중요하다는 ‘화재 발생 초기 5분’과 혼자 싸우고 있었다. 그 역시 설성면 지역대를 홀로 맡고 있는 소방관이다. 동료를 향해, 윤 대원은 시속 80km까지 가속 페달을 밟았다.

흔히들 ‘소방서’ 하면 2·3층짜리 널찍한 건물에 소방차가 여러 대 도열해 있는 풍경을 떠올리겠지만, 전국에는 박만기·윤순만 대원처럼 혼자 일하는 소방 지역대가 506곳이나 된다. 전체 지역대 746곳 중 70% 가까이가 ‘1인 소방서’인 것이다.

소방 지역대 68%가 '나 홀로 소방서'

이곳 소방관은 24시간씩 2교대로 혼자 지역대를 지킨다. 출동을 하든 불을 끄든 최소 두 명이 한 조가 돼야 한다는 소방 안전 지침은 그저 ‘지침’일 뿐이다. 혼자 출동한 대원은 종종 위험에 처한다. 지난 2월 순직한 일산소방서 고 조동환 대원도 ‘나홀로 소방관’이었다. 조 대원은 후발대가 도착하기 전 골프 연습장에서 홀로 불을 끄다 10m 아래로 떨어졌다. 수관(물 호스)을 들고 손전등을 밝히고 무전기로 보고도 하는 ‘1인 3역’이 안전을 위협했다. 이천 지역 소방 업무를 보조하는 의용 소방대원으로 화재 현장을 자주 목격한 김경하씨(카센터 운영)는 “조 대원의 죽음은 인재다”라고 말했다.

소방관도 불이 무섭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수관을 잡고 뒤를 따라오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윤순만 대원은 “연기가 꽉 찬 지하실 화재 현장에 혼자 있으면 패닉 상태에 빠진다. 탈출 원칙은 수관을 따라 나오는 건데, 1초가 10년처럼 느껴지는 그때 당황하면 수관을 놓치게 되고 결국 변을 당한다”라고 1인 소방의 고충을 설명했다. 화재 현장으로 가는 길에 윤 대원은 박 대원에게 끊임없이 현재 위치를 보고했다. 혼자 불을 끄고 있는 박 대원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홀로 소방관’은 소방 인력의 부족으로 생겨났다. 소방관 한 사람이 맡은 시민 수는 전국 평균 2000여 명. 인천 서부, 경기도 고양시 등은 1만명이 넘는다. 영국 820명, 프랑스 240명에 비하면 턱없는 수치이다. 꼭 ‘나홀로 소방관’이 아니더라도 인력 부족은 곳곳에서 사고를 부른다. 지난해 CJ 육가공 공장 화재 현장에서 혼자 창고 안으로 진입했다가 목숨을 잃은 이천소방서 고 윤재희 대원은 원래 ‘진화 대원’이 아닌 ‘운전 대원’이었다. 지금 소방 인력으로는 운전 대원이 운전만 할 수가 없다. 올해 1월에는 안성소방서 이수호 대원이 사흘째 내리 불을 끄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사람 구하는 일에 '실적'을 따지다니..."

소방관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은 오래 전부터 요구돼왔다. 순직 소방관이 생길 때마다 인터넷 여론이 들끓었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 때면 늘 소방방재청에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관심은 금세 식었다.

ⓒ시사IN 한향란소방관은 혼자 출동하면 산소통 등 안전 장비를 갖추기가 어렵다.
결국은 ‘정부 예산’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3억5000만원짜리 고가 사다리를 마련하는 문제에 대해 한 국회의원은 “그걸로 사람을 몇 명 구했냐”라고 소방관에게 물었다. 투자를 하면 당연히 실적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였다. 윤순만 대원은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을 두고 ‘실적’을 따지면 안 된다. 한 명을 구해도 가치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어이없어했다.

소방 인력이 충원되지 않는 이유를 조직 구조에서 찾는 이도 있다. 전국 소방 조직이 ‘이중 관리’를 받는다는 것이다. 지시는 행정자치부 산하 소방방재청에서, 예산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내려온다. 소방관들은 그 두 기관이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 문제를 서로 떠넘긴다고 불만이다. 소방방재청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소방방재청 정종률 재정기획담당관은 “행자부가 지자체에 나눠주는 공무원 총액인건비에서 소방직 예산이 분리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각 지자체에서 총액인건비를 나눌 때 일반직보다 소방직 공무원을 좀더 배려해주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자체는 정부가 별도로 소방 부문을 배려해 주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고 호소한다. 고 조동환 소방관 영결식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정부가 가장 어렵고 힘든 소방 분야를 지방에 맡겨놓고 외면해왔다. 해외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가 소방 업무를 지방에 완전히 맡기는 경우는 없다”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시사IN 한향란윤순만 대원(위)은 “혼자 불을 끄는 것만큼이나 혼자 밥 먹는 것도 싫다”라고 말한다.
경기도는 올해 3개 시·군에 소방서를 추가로 개청한다. 필요한 인원 150명은 다른 경기도 내 소방서에서 빼올 계획이다. ‘나홀로 소방관’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직 소방관 모임인 소방관발전협의회 박명식 회장(60)은 “소방 조직이 경찰청처럼 ‘소방청’으로 독립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짤 때 소방청 독립 논의가 나왔지만 끝내는 무산됐다.

밤 9시, 이천 설성면 목조 작업실에 붙은 불은 오른쪽 지붕을 반쯤 태우고 끝이 났다. 모가, 설성, 율면, 장원에서 각자 출동한 ‘나홀로 소방관’ 네 명이 방수 재질의 질긴 지붕을 도끼로 뜯어내며 잔불을 진화했다. 윤순만 대원은 땀과 물에 흠뻑 젖은 몸으로 다시 소방차에 올라탔다. 그는 “사람이 다친 사고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라며 출동 때부터 굳어 있던 얼굴을 활짝 폈다. 교대 근무자가 오는 시각은 다음 날 아침 9시. 윤 대원은 남은 12시간 중 혹시 또 일어날지 모르는 화재에 대비해 차에 물을 채우고 수관을 씻어야 한다. 지역대로 돌아가는 차 안은 아직 연기 냄새가 매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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